독일로 달리는 '지하철 1호선'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일 오후 3시 서울 대학로의 소극장 학전블루. 설 연휴 마지막날 귀경행렬로 전국이 몸살을 앓을 때 이곳에서는 한국 공연사의 새 장이 열리고 있었다.

김민기가 이끄는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1호선' 이 발차 6년만에 1천회 공연이라는 전무한 공연기록을 세운 것이다.

평소 '씩' 하고 웃는 정도면 그뿐, 표정을 아끼기로 소문난 제작자 겸 번안.연출자인 김씨도 이날만은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공연시작 전 무대에 서 지난 날을 회상하는 그의 눈에도 물기가 고였다.

"지금까지 순조로운 운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노력도, 우리 출연진들의 수고도 아닙니다. 딱딱한 의자도 마다않고 비좁은 소극장을 찾아와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본 관객 여러분들의 덕택입니다. "

실제로 '지하철1호선' 은 그런 관객들의 열애가 없었으면 지금까지 굴러올 수가 없었다. 우리 공연시장의 관객 층이 워낙 엷다보니 '물리면 뱉어버리는' 게 자연스런 세태였다.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 '1천회' 는 그 자체로도 기념비가 될 만하다. '넌센스' '난타' 등이 각기 1천회 기록 도전에 나서고 있지만, 공연의 연속성이 다소 떨어져 '지하철1호선' 에 비할 바는 못된다.

이날 '지하철1호선' 은 원작(베를린 그립스극단의 'Linie 1' ) 의 고향 독일에서부터 낭보를 접했다.

원작자 폴커 루트비히가 직접 와서 축하했을 뿐더러 원작(현재 9백43회) 이 1천회가 되는 내년 가을 베를린에서 합동공연을 하기로 했다. 루트비히는 "지금부터 초청비 마련을 위해 열심히 뛸 것" 이라는 농담으로 관객들을 웃겼다.

더 큰 선물보따리는 독일저작권협회로부터 왔다. 앞으로 '지하철1호선' 의 저작권료를 전혀 받지 않겠다는 통보였다. 그것도 이미 올 1월 공연까지 소급해서 적용하겠다는 것. 김씨는 "지금까지 1억원 정도의 저작권료를 냈는데 이제는 그 부담에서 헤어날 수 있게 됐다" 며 기뻐했다.

이제 소극장 뮤지컬의 상징이 된 '지하철1호선' 은 한국관광객의 꾐에 빠져 아이를 가진 옌볜처녀(선녀) 가 애인을 찾아 서울로 와서 겪는 인생사다.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를 배경으로 안경.걸레.날탕 등 '3류인생' 들의 서울살이가 엮인다. 강렬한 비트의 라이브 음악에다 구어체 중심의 맛깔스런 노랫말과 대사, 세태 풍자 등으로 우리 뮤지컬의 미답지역을 개척했다.

방은진.설경구 등이 이 무대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현재 일본 공연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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