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어린 왕자' 박영훈 벌써 4관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반집'이 결국 최후의 심판관이 됐다. 처음에 2승, 그러나 2연패. 이리하여 2 대 2가 되었는데 최종전에서 반집을 이겼다. 박영훈(사진) 9단은 이 반집이 가져다 준 행운과 더불어 라이벌이자 친구인 최철한 9단을 3 대 2로 꺾고 기성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벌써 4관왕이다.

박영훈 9단은 "기쁘다. 번기(番棋)로 치러지는 타이틀전에선 첫 우승이다"고 말했다. 박영훈은 그동안 행운의 사나이로 불리기도 했다. 이창호 9 단을 만나지 않고 우승을 거둬온 박영훈은 이창호의 벽 앞에서 좌절을 겪은 다른 젊은 강자들에 비해 운이 좋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 말 속엔 아직 실력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기성전의 상대는 타이틀전에서 이창호를 여러 번 격파한 최철한 9단이다. 기성도 지난해 최철한이 이창호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그 최철한을 이번에 넘어섰으니 박영훈은 내심 더욱 기뻤을 것이다. "최종전은 시종 어려웠다. 마지막까지 승부가 엎치락뒤치락했다. 1집반쯤 이기는 듯했다가 반집 지는 분위기였는데 상대방 실수로 반집을 이기게 됐다."

박영훈은 최종국의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듯 실감나게 분위기를 전해 준다. 지난해엔 후지쓰배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고 올해 들어서자마자 중환배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다. 며칠 전엔 초단 돌풍의 주인공 김동희 초단에게 2 대 1 역전승을 거두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에서 우승했고 이번 기성전까지 4관왕이 됐다. "성격이 순해서인지 무척 강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데 우승은 참 쉽게 한다. 그게 박영훈의 매력이다." 동료.선배들의 감상이다.

심성으로 말한다면 이창호 9단에게 견줄 만한 큰 그릇으로 최철한 9단을 꼽는 기사들도 많다. 그러나 최철한은 '독사'라는 별명을 얻었다가 인터넷 공모까지 거치며 겨우 바뀐 것이 '맹독(猛毒)'이다. 강인한 기풍 탓이다.

반면 박영훈은 큰 특징 없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그런데도 모든 게 순탄해서 '어린 왕자'나 '황태자' 같은 별명을 얻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박영훈의 바둑도 조금씩 사나움을 띠기 시작했다. 실력이 늘었다는 평가도 있다.이에 대해 박영훈은 "그런 느낌도 있어요" 한다. 자신감이 생겼다는 증거다. 현재 26승 12패로 다승 1위.

한편 85년생인 박영훈 9단과 최철한 9단은 나란히 병역 혜택을 받아 9일자로 공익근무에 들어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