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명 과학자들의 삶의 실체 벗긴 '2500년 과학사를…'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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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중얼거린 적이 없다.

지동설을 주장해 종교재판에 회부된 그는 교회가 과학적인 문제에 잘못된 판결을 내린다고 생각했음에도 교회의 명령을 위반하기에는 너무도 종교적인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급한 성격과 신랄한 혀 탓에 적이 많았던 갈릴레이가 교회와 벌였던 싸움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그를 과학의 순교자로 여기기도 하지만 이는 이야기의 일부분일 뿐. 실제 그는 대학인들이 항시 가운을 입어야 한다는 규정에 대해 반발하고 오만한 법규들을 폭로했던 것처럼 폐쇄적인 견해에 저항한 사회의 순교자였다.

찰스 다윈(1809~82) 은 자연선택이론의 핵심을 파악한 후 책으로 쓰기까지 1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당시 그의 노트에는 초기 천문학자들에 대한 박해나 처형을 당하는 꿈에 대한 언급이 있을 만큼 연구결과는 다윈에게 공포였다.

파격적 이론을 주장한 그는 이처럼 심약한 사람인데다 논쟁을 싫어해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꺼려 했다.
그의 논문을 정리해 학회에 발표했던 동료들이 아니었다면 다윈의 진화론은 사장됐을지도 모른다.

시대를 움직인 과학자들의 이면에는 상징적으로 새겨진 이미지와 상반되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
특히 중세 이후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의 도그마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이 두 인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기도 하다.

''2500년 과학사를 움직인 인물들'' (로이 포터 엮음.조숙경 옮김.창작과비평사.9천8백원) 은 그런 점을 읽어내는 지적 재미가 쏠쏠한 저작이다.

이 책은 캠브리지 제프리 로이드 교수를 비롯한 17명의 과학사학자들이 갈릴레이.뉴턴.다윈.아인슈타인.튜링 등 혁혁한 과학적 성과를 거둔 17명의 과학자들에 대해 쓴 과학인물사로 인물과 과학적 발전과정을 연결지어 조망하고 있다.

특히 저자들이 지닌 한 인물의 생을 관통하는 시야와 과학적 발견에 대한 통시대적 접근은 이 책이 가진 진한 매력. 가령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 연구가 가진 의의를 그 시대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우주론이 고대 그리스의 테두리를 넘어 중세의 굳건한 신학체계로 자리잡는 배경까지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수학에서 미.적분법을 창시했고 ''만유인력의 법칙'' 을 확립한 아이작 뉴턴(1642~1727) 은 예측할 수 없이 다양한 방향으로 진보해가던 새로운 과학에 방향을 제시한 인물이다.

이런 그가 어린 시절 불행.사회적 열등감.지적인 좌절감에서 오는 긴장으로 격정적인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했는가 하면 연금술을 가장 철저하게 연구한 사람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뉴턴을 올바르게 볼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세금징수원이었던 앙트안느 로랑 라브와지에 (1743~94) 가 역사에 남는 화학자가 되기까지 직장 출근 전 두 시간과 퇴근 후 세 시간을 과학연구에 할애했다는 일화와 인생 말년에 전쟁과 무기에 대해 절망하며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배관공이 되겠다" 는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 의 술회가 전하는 교훈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이 책의 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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