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찾아 해외로 … ‘아일랜드 엑소더스’ 160년 만에 재현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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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 지원이 임박한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한 남자가 추위에 떨고 있다. 17일(현지시간) IMF 관계자들은 더블린을 방문해 구제금융에 대한 필요성을 최종 점검했다. [더블린 AP=연합뉴스]

19세기 경제난으로 국민이 떼지어 조국을 떠난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18일 아일랜드에 다시 대규모 ‘엑소더스(탈출)’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향후 4년 동안 약 10만 명의 아일랜드인이 해외 이민을 떠날 것으로 이 나라 당국은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0만 명은 이 나라 인구(약 410만 명)의 2.4%에 해당한다. 아일랜드는 19세기 중반의 대기근으로 약 200만 명이 미국 등으로 떠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80년대에도 경제난으로 젊은이들이 대거 해외로 진출했었다.

 인디펜던트는 젊은이들이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기 힘든 게 해외 이민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전했다. 아일랜드의 현 실업률은 13%에 달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어두운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아일랜드 정부는 내년도 공공지출 규모를 현재보다 15% 줄일 계획이다. 필연적으로 국민들의 복지 수준이 크게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보도에 따르면 가장 먼저 이민을 준비 중인 그룹은 건설 관련 전문직들이다. 건설 경기 하락으로 수년째 실업 상태인 배관공·전기공·목수 등이 국외 취업을 시도 중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정착하려고 하는 나라는 호주나 캐나다다. 미국에 비해 이민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까닭이다. 영어를 쓰는 아일랜드 국민으로서는 아무래도 영어권 국가로의 이주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또 이들 국가에는 이미 수백만 명의 아일랜드 이민자가 정착해 있어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초기 정착과 관련된 도움을 받기도 쉽다.

 한편 경제 전문가들은 이민 붐이 일면 아일랜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규모 인구 감소로 부동산 경기 회복이 더뎌지는 데다 전문직 종사자들까지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는 ‘인재 유출’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마저 큰 까닭이다. 아일랜드에는 현재 약 30만 채가 빈집이다.

 이 같은 심각성으로 아일랜드 정부는 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아일랜드 대기근=1847년 감자마름병으로 주식인 감자 수확량이 크게 줄면서 발생한 사태. 800만 인구 중 15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 이로 인해 영국인 지주의 땅을 소작해온 아일랜드 농민들은 앞다퉈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30년 동안 200만 명 이상이 해외로 빠져나가 1870년대 아일랜드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가문 등 미국에는 이때 이주한 아일랜드계 후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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