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말로 잠자리를 쨍아라 불렀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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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말로 잠자리를 ‘쨍아’라고 불렀어요. 싸리나무 뽑아서 쨍아 잡던 시절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철사를 대나무에 꽂아서 거미줄을 감으면 잠자리채가 됐지요.” (안광택·60)

“정신대 끌려간다고 부모님이 서둘러 ‘중신(중매)’을 놓아줬어요. 학교 댕기고 싶었는데…. 열아홉에 결혼해서 엄한 시어른들 밑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러.”(김삼정·84)

12일 오후 서울 성동구청 6층 회의실에서 ‘2010 서울말 으뜸 사용자 선발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서울말이 표준어의 기초가 된 말임에도 다른 사투리에 비해 보존이 잘 안 되고 있어 지난해부터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과 국어문화운동본부가 주최하고 국립국어원·문화체육관광부·성동구가 후원해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서울 토박이 20여 명이 참가해 서울 이야기를 ‘서울말’로 풀어냈다.

어렸을 적 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금호동 토박이 안광택(60)씨가 “비석치기, 구슬치기를 무지 열심히 했는데 그래서 지금도 몸이 유연한 것 같다”고 말하자 좌중에서 웃음이 터진다. 심사위원석에 앉은 홍윤표(국문학과) 전 연세대 교수가 “나는 찜뿌놀이가 재미있었다”며 맞장구를 치자 “고무공으로 야구처럼 하는 놀이 아니냐”며 앞다투어 설명하는 참가자들 덕에 웃음바다가 됐다.

세월이 흘러 기억에만 남아 있는 장소나 사물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떡볶이촌으로 유명한 신당동에는 개울이 있어서 송사리·미꾸라지가 자랐다” “을지로 일대는 대장간이 많아 쇠정골로 불렸다” “중앙시장 자리에는 원래 연못이 있어서 친구들과 근처에서 놀곤 했다”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왕십리에서 오래 살았다는 홍옥선(63·여)씨는 “전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는데 왕십리에 학생들이 많아서 문을 못 닫고 매달려 가는 이들도 많았다”고 하자 전차에 대한 수다가 한바탕 벌어진다. 김기복(77·창신동)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야기 속에서는 ‘서울 사투리’가 툭툭 튀어나온다. ‘-했거던’ ‘-했걸랑’으로 끝나는 말이 대표적이다.

홍윤표 심사위원은 “‘언제나’를 ‘은제나’로 ‘별로’를 ‘별루’로 발음하는 등 모음 교체 현상이 서울 사투리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으뜸상을 수상한 이동열(81) 할아버지도 수상 소감을 “헐 말(할 말) 없습니다”라고 말해 서울 사투리를 그대로 보여줬다. 주최 측은 이 대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기록한 책자를 만들어서 보존하고 서울 토박이를 확보해 ‘서울 문화 전도사’ 등으로 양성할 계획이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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