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며,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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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 북주(北周)에 하돈이라는 대장군이 있었습니다. 큰 공을 세웠는데 받은 상이 작다고 불만이었지요. 그래서 조정을 원망하는 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권신 우문호의 미움을 사 자살을 강요받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지요. 목숨을 끊기 전 그는 아들 하약필을 불러 말합니다. “나는 혀 때문에 죽는 것이다. 잘 기억해 두어라.” 말을 마친 하돈은 송곳으로 아들의 혀를 찔렀습니다. 그 아픔과 상처를 간직해 평생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권계를 준 것이지요.

 약필은 “군주가 신중하지 못하면 신하를 잃고, 신하가 신중하지 못하면 목숨을 잃는다”는 아버지의 유훈을 가슴에 새겨 늘 말을 삼갔습니다. 그런데 수 왕조로 바뀌고 벼슬이 날로 높아지면서 교만해졌습니다. 수 문제로부터 “너는 세 가지 지나침이 있다. 질투가 지나치고 자만이 지나치며 군주를 무시하는 게 지나치다”고 경고까지 받았지만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더욱 중용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다가 결국 수 양제의 손에 처형을 당하지요. 끝내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만 겁니다.

 송곳으로 찔러 경계해도 허사였을 만큼 혀는 함부로 놀려지기 쉬운 구조로 돼 있습니다. 만져보면 생각보다 크고 두껍고 근육이 발달한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옛사람들이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며,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고 경계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이번에 퍼스트레이디의 로비 의혹을 발설한 야당 의원의 경우도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세간에서 그런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증거도 없이, 예전에 증권가에서 나돌던 얘기를, 상관없는 대정부질문 자리를 빌려 끄집어내는 건 경우 없고 저열한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의혹이 어디까지 사실이냐를 떠나 다른 노림수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걸 ‘아니면 말고’ 두둔하는 그 당 원내대표라는 분이야 우리네 정치 현실이 그 수준일 때부터 정치하던 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그런 거 바꿔보겠다고 나선 386 정치인이 선배들의 낡은 매뉴얼이나 베끼고 있는 건 유권자를 우습게 여기고 속여 넘기려는 짓거리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면책특권이라는 갑옷이 얼마나 튼튼할지 몰라도 제 스스로 깨무는 혀까지 보호할 수는 없는 겁니다.

 이런 장면을 잘 기억해 두시면 역사책을 따로 뒤질 필요가 없습니다. 엽기적인 하씨 부자가 아니더라도 세 치 혀를 잘못 놀려 화를 자초한 사람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무수하게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함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격언이 없는 나라가 없을 정도입니다. 찾아봤더니 다 좋은 말들 중에서 페르시아의 금언이 가장 겁이 납니다. “입이 가벼울수록 수명은 줄어든다.”

 오늘날 얼굴을 맞댄 대화보다 문자나 블로그, 트위터 같은 원거리 디지털 대화가 더 많아진 시대에는 이런 금언도 하나 보태져야 할 겁니다. “손가락이 과속할수록 수명은 줄어든다.” 사실 손가락은 혀보다 훨씬 더 위험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입으론 못할 말도 쉬이 할 수 있고, 익명의 그늘에 숨으면 과격한 욕설이나 거짓도 거리낄 게 없습니다. 게다가 말은 사라지지만 글은 영원히 남습니다. ‘엔터’ 키를 떠난 글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지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또는 장난으로 놀린 손가락이 언제 어디서 부메랑이 돼 날아와 내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얘깁니다. 언젠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어느 졸업식에 가서 그런 경계를 축사로 대신한 적이 있지요. 그만큼 중요하고 조심해야 할 일이라는 겁니다.

 유대인들의 가르침 중에 참으로 울림이 있는 말이 있습니다. “네 입 안에 있는 말은 너의 노예지만, 그것이 입 밖에 나오면 곧 너의 주인이 된다.” 말이건 글이건 다를 게 없습니다. 홧김에 던진 말이, 기분 상해 두드린 글이 내 발목을 잡고, 나를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마디 말 잘못으로 평생 쌓은 선(善)을 무너뜨린다”는 공자님 말씀이 바로 그 얘기지요. 얼마나 억울하고 분한 일입니까.

 그렇다고 입을 봉할 수도, 손가락을 묶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지요? 오랜 박해를 겪으며 지혜를 터득한 유대인들이 해답까지 줍니다. 주문처럼 외우면 호신부적이 따로 없을 말입니다. “내 말을 내가 건너는 다리라고 생각하라. 단단한 다리가 아니라면 너는 건너려 하지 않을 테니까.” 기왕이면 하돈의 송곳으로 두드려보고 건너면 더욱 좋을 겁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j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