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가 만난 시장 고수] 남동준 삼성자산운용 주식운용2본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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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내년에는 올해보다 견조한 주가 상승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증시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지금이 주식 편입 비중을 높일 좋은 기회라고 봅니다.” 남동준(45) 삼성자산운용 주식운용2본부장은 무리하게 엑셀러레이터를 밟지 않는 ‘안전 정속 운행형’ 펀드매니저로 통한다. 주가지수 대비 연 7% 정도의 꾸준한 초과수익을 추구한다. 그를 만나면 여유로움이 감지된다. 기업의 변화 능력에 주목하는 나름의 투자 철학을 흔들림 없이 지키는 데서 나오는 힘이다.

남 본부장은 지난해 유명세를 치렀다. 일본 노무라자산운용이 아시아 펀드를 새로 출시하면서 한국 주식의 운용을 위탁할 펀드매니저로 그를 콕 찍어 선정했던 것이다. 그의 투자 안목은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남 본부장이 굴리는 간판급 상품인 ‘삼성코리아대표펀드’는 2007년 1월 설정일 이후 78%의 누적 수익을 올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33.5%)을 44.5%포인트 앞질렀다. 최근 1년 수익률은 24.5%로 코스피지수 대비 5.3%포인트 더 높았다.

 그의 펀드는 이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안정적인 성과를 내면서 올해 펀드시장을 휩쓴 환매의 쓰나미도 피해갈 수 있었다. 삼성코리아대표펀드의 판매 잔액은 현재 8200억원으로 올 들어 약 100억원이 늘었다.

 - 신중한 펀드매니저로 알려져 있는데, 향후 증시를 밝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성장 스토리를 새롭게 써나가는 기업들에 항상 주목한다. 내가 증권업계에 들어온 게 올해로 20년째인데 그동안 코스피지수는 90%밖에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종목별로는 주가가 40~50배 뛴 기업이 많다. 이들 성공 기업의 가장 큰 공통점은 ‘변화 능력’이었다고 나는 본다. 기업의 변화 과정은 미래의 시장 트렌드를 간파한 과감한 투자와 피땀 어린 구조조정 등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선 투자를 감행할 적정한 덩치와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도 요구된다. 현재 한국 증시에는 이런 변화 노력을 통해 글로벌 시장의 강자로 성장한 기업이 많다.”

 -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달라.

 “오리온을 7~8년 전부터 주목했다. 내수 음식료 기업으로서의 성장 한계와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에 따른 자금 조달 문제 등으로 투자자들이 외면했던 종목이다. 그러나 중국 등에 과감히 진출해 ‘초코파이’로 제과시장을 평정했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정리해 수천억원의 현금을 챙겼다. 그 결과 7년 전 3만원대였던 주가는 현재 38만원으로 10배나 뛰었다. 기아자동차와 삼성전기 등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제품 라인의 변화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케이스다. LG화학과 삼성테크윈 등도 비슷하다.”

 - 그런데 이런 기업들은 주가가 이미 많이 오르지 않았나.

 “그런 게 사실이지만, 좋아진 기업 내용을 들여다보면 앞으로도 더 오를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우량 기업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9~10배 안팎인데, 경쟁관계에 있는 해외 업체들은 15배 이상인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 기업들이 현재 이익 규모만 유지해도 주가 상승에 별 문제가 없다.”

 - 한국의 대표 기업들은 수출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의 원화 강세 흐름을 감안하면 실적이 아무래도 나빠지지 않겠나.

 “환율이 큰 변수이긴 하다. 원- 달러 환율은 올해 1100원 아래로 내려가고 내년에는 1000원을 향해 계속 떨어질 것이다. 문제는 그 속도다. 기업들이 예측하는 범위에서 완만하게 떨어지면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기업들이 원화 강세 흐름에서도 현재의 실적을 계속 유지한다면 놀라운 일일 텐데, 나는 그런 저력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 3일 나올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가 시장에 미칠 파장은 어떻게 보나. 유동성 장세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는데.

 “글로벌 유동성은 이미 포화 상태다. 돈을 더 푼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본다. 나는 별 기대도 우려도 하지 않는다. 다만 당분간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론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내년 2분기께부터는 시장이 한결 안정된 상승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은 비 오는 날과 개는 날이 반복되면서 땅이 굳어지는 과정으로 보고 싶다.”

 - 그러면 내년 코스피지수는 어떻게 전망하나.

 “나는 주가지수 흐름에 개의치 않고 종목만 보는 펀드매니저다. 주가지수는 시장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잣대로만 활용한다. 굳이 전망하라면 한국 증시의 저평가 정도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기준으로 삼고 싶다. 나는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전반적으로 30% 정도는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한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코스피지수가 2400선까진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하겠다.”

 남 본부장은 “한국 대표 기업들의 주가 상승 흐름이 3~5년은 더 이어질 것”으로 낙관했다. 이번 금융위기를 거치며 더 강해진 체질과 상황 대처 능력이 그런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예상이다.

 - 요즘은 노후에 대비해 10년 이상을 바라보는 장기 투자자도 많다. 길게 봤을 때 한국 기업을 둘러싼 리스크는 무엇이라고 보나.

 “부품·소재 산업의 낙후성이 가장 큰 걱정이다. 글로벌 기업들 간에 제품 공정 다툼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최강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소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2015년 이후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신개념 산업이 속속 등장하는 단절의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할 때처럼 많은 기존 산업들이 폐허가 될지 모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소재·부품 산업의 기초를 서둘러 다져야 한다.

 금융산업도 문제다. 시장의 여유자금은 갈수록 불어나지만, 이게 기술과 아이디어를 만나 산업자금화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이 아무리 성장해도 금융업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절름발이 자본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일본 경제가 뒤뚱거리다 주저앉게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남동준의 투자철학

● 시장 지배력을 갖춘 글로벌 강(强)기업에 투자

● 구조조정으로 턴어라운드하는 기업을 발굴

● 1년 이상의 중장기적 안목으로 투자

● CEO가 시장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면 제외

● 일반의 기대가 급상승하며 투자가 몰리면 매도

글=김광기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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