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필·호환 안되는 프린터 유럽에서 못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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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그간 프린터는 싸게 팔고 대신 프린터용 잉크 카트리지를 비싸게 팔아 짭짤한 수익을 올렸던 프린터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유럽의회가 다른 부품과 호환이 안되거나 재활용이 불가능한 제품의 생산을 2006년부터 금지하기로 함에 따라 프린터 업계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유럽의회는 각종 공산품의 재활용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이런 노력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대표적 사례로 프린터의 잉크 카트리지가 꼽혔다. 프린터 회사들이 제품별로 고유한 전자장치를 장착해 다른 회사의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재활용이 불가능하게 한다는 게 유럽의회의 지적이다.

유럽의회는 이같은 낭비와 비효율을 막기 위해 제품의 분해와 재결합이 가능하도록 제품 디자인을 보편성있게 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에는 유럽 내 모든 전기를 사용하는 공산품들은 "재활용을 불가능하게 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명문화돼 있다.

휼렛패커드(hp)·렉스마크·캐논·엡손 등 프린터 회사들은 대부분 프린터 본체를 싸게 파는 대신 다른 회사 제품과는 호환도 안되고 리필(잉크 재주입)도 안되는 잉크 카트리지를 상대적으로 비싸게 팔아 수익을 올리는 전략을 쓰고 있다. 세계적으로 1년에 팔리는 잉크 카트리지는 약 3백억달러어치로 이중 90% 가량이 호환·리필이 불가능한 제품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 법안으로 hp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회사는 잉크 카트리지 매출이 프린터를 포함한 관련기기 매출의 절반을 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hp는 법안 통과 후 논평을 일절 내놓지 않았다.

한편 유럽의회의 법안 통과를 계기로 프린터 업계의 판매 전략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업계 스스로 타사 제품과 호환이 가능한 잉크 카트리지나 프린터의 표준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정재 기자

jjy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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