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鄭 단일화 말로는 접근 속셈은 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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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의원간의 단일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성사될 경우 1강2중 구도의 대선 지형을 뒤흔들 이슈다.

盧후보는 4일 대구 방문에서 "鄭의원 쪽에서도 경선을 검토해온 만큼 지도자의 결단 하나만 남았다"며 "이길까 질까 고민하지 말고 국민에 맡기자"고 거듭 국민경선 방식의 단일화를 촉구했다.

鄭의원도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날 대전지역 기자간담회에서 단일화 방식과 관련해 "상대가 제안을 해왔기 때문에 국민들이 후보 단일화를 원한다면 국민 경선방식을 포함해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측의 자세는 종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다. 盧후보는 "단일화는 없다"고, 鄭의원은 "국민 경선은 안한다"고 각각 말해 왔다. 양측이 한발씩 물러난 만큼 단일화 논의는 보다 활발해지게 됐다.

주변 상황도 단일화 추진파 입장에선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민주당에선 논의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중진들의 신경전까지 벌어지는 양상이다.

盧후보는 일단 단일화 창구로 정대철(鄭大哲)선대위원장을 지명했다.

김상현(金相賢)고문은 盧·鄭 두사람의 담판을, 김근태 고문은 후보 단일화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박상천(朴相千)최고위원은 鄭의원을 직접 접촉하며 가교역을 자임하고 있다.

4일 저녁 긴급소집된 최고위원회의는 "협상팀을 구성, 鄭의원 측과 구체적 협상에 착수하되 협상팀 구성은 盧후보에게 위임한다"고 정리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의 집권에 거부감을 갖는 이른바 '반창 세력'의 압박은 가장 큰 단일화 촉진 요인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섣불리 단일화가 성사되리라고 예단키 어려운 분위기다.

아직까진 양측 모두 단일화를 거부하거나 수동적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명분축적용 정도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盧후보측 내부에선 "경선을 하면 좋지만 안되면 '상황 정리용'"이라고 자신들의 제안을 설명하고 있다. 鄭의원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한 이유도 민주당 탈당파에 대한 유인책의 성격이 있다는 지적이다.

양측 모두 '단일화 무산의 책임을 뒤집어쓰면 안된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단일화 형식에 대한 접점 마련도 난제다. 盧후보는 이날 "상당한 차이를 합리화하려면 국민 경선이란 절차밖에 없다"며 "국민 경선을 받든지, 단일화 얘기를 그만두든지 鄭의원이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鄭의원측도 "협상 의제로 검토는 하겠지만 민주당식 경선은 법적·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盧후보측은 6, 7일께 게임의 룰을 마련하고 TV토론을 1주일 정도 벌인 뒤 주요 도시를 돌며 경선을 벌이면 20일에서 25일까지 경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鄭의원측에선 시간이 촉박하다고 본다. 그래서 여론조사식 표본추출로 선거인단을 구성한 뒤 경선하는 방안 또는 후보단일화 기구에서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방안 등 제3의 방식이 내부에서 거론되고 있다.

대선 이후에 대한 두 사람의 그림도 다르다. 盧후보는 개혁정당을 구상하고 있다. 鄭의원에게 후보를 양보하기 어려운 것이다. 鄭의원도 "대선 이후에도 정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盧후보식의 개혁정당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지지율의 변화는 마지막 핵심 변수다. 단일화 방식에 대한 합의가 안되더라도 어느 한쪽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거나 급락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양측이 모두 자신의 정체성보다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데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면 단일화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강민석·김성탁 기자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 관련 발언>

◇노무현 후보

▶9. 24 "안하겠다. 鄭의원과 나는 살아온 길이 다르고 함께 한 사람들이 다르다. 그렇게 해서 집권한다 해도 내가 현대그룹의 집안 뒤치다꺼리를 할 일 있느냐."

▶10. 31 "(鄭의원 측의 '경선 검토'보도에 대해)진실로 힘을 실어 정식으로 제안해 온다면 선대위에서 검토해 결정할 것."

▶11. 3 "TV토론을 통해 검증하고 국민경선을 통해 단일화하자. 5일 밤까지 결정해 달라. "

◇정몽준 의원

▶9. 24 "3자구도보다 2자구도에서 지지율이 앞서 단일화 노력을 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

▶10. 23 "국민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당선 가능성이 큰 사람을 중심으로 단일화가 될 수 있다. "

▶11. 1 "후보 간 합의방식으로 결정해야 한다. 후보 단일화를 한다면 내 지지표는 盧후보에게 안 가겠지만, 盧후보 지지표는 나에게 올 것이다. "

▶11. 4 "창당대회 후 후보 단일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민주당과 협의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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