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예능 프로에 발목 잡힌 가수 … 이하늘‘패키지 출연설’시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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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SBS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인기가요’ 담당 PD는 “세븐 등 출연자 스케줄이 이미 차 있어서 DJ DOC의 출연을 한 주 미룬 것일 뿐인데 오해한 것 같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DJ DOC는 ‘김정은의 초콜릿’에는 출연·녹화를 마쳤다”며 “‘강심장’과 연계해서 SBS 가요프로 출연을 제지한 것이라면 과연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이하늘이 자기 스케줄대로 출연을 고집하는 ‘스타 권력’을 휘두른다는 볼멘소리다.

문제가 된 ‘강심장’은 회당 20명 안팎이 출연해 토크 배틀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비슷한 집단토크쇼로 ‘스타골든벨’(KBS) ‘세바퀴’(MBC) 등이 있다. 방송사 입장에선 저예산으로 고효율(시청률)을 올리는 대표적인 프로그램들이다. 방송가에선 이런 프로그램과 가요프로 출연을 연계시키는 이른바 ‘패키지 출연설’이 끊임 없이 돌았다. 최근 논란이 된 ‘5초 가수’도 이런 연장선상이다. 노래 분량은 곡당 5초에 불과한데,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캐릭터를 부여 받고 가십기사를 생산해 인기를 유지하는 가수들이란 뜻이다.

집단 토크프로에는 ‘15초 출연자’가 넘쳐난다. 수십 명이 나온다 해도 다수는 그날의 엑기스 토크에 밀려 병풍 노릇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걸 벗어나려고 무리한 토크를 벌이다가 인신공격·선정성 논란에 휩싸이는 일도 적지 않다. 이하늘이 ‘가수들을 방송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는 PD들의 권위의식’을 질타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한 SBS 관계자는 패키지 출연설은 부인하면서도 “우리 회사 프로에 나온 가수를 좀 더 잘해주고 싶은 건 인지상정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상업방송 논리만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가수가 음악 실력보다 ‘예능감’으로 주목 받는 현재 구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방송사들이 이를 개선하긴커녕 오히려 이를 볼모로 시청률 경쟁을 벌인다면, 가요시장의 왜곡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자사 프로그램 이기주의를 넘어 지상파라는 공공재를 시청자를 위해 슬기롭게 사용하는 지혜가 아쉽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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