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선진국, 생활속에서 가르친다:美,경제도 놀이式으로 공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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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경제는 생활 속 습관과 체험이다.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어릴 때부터 경제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평소 경제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미국 등 선진국은 청소년을 소비자만이 아닌 미래의 생산자로 키우는 일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보고 가정·학교·사회가 합심해 경제교육을 한다. 신용사회 구축과 시장경제 발전이 공짜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책과 이론 중심의 '죽은 교육'이 아닌 생활 중심의 '산 교육'을 시키고 있다.

◇가정에서 기초 닦고=독일 가정에선 용돈을 거저 주지 않는다. 돈은 노동을 통해 버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가르치기 위해 집안일에 값을 매겨 용돈을 준다.

부자 나라지만 아이에게 용돈을 빠듯하게 주기 때문에 상점 앞에서 어린이들이 좌판을 깔고 자신이 쓰지 않는 레고 장난감이나 곰인형 등을 팔아 용돈을 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마이클 얼미스턴 교수의 자녀인 대학생 조시(22)와 재키(20)는 스무살이 넘은 성인이지만 신용카드가 없다. 18세 이하 미성년이나 수입이 없는 대학생도 부모가 동의하면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미국 부모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전엔 카드 사용은 안된다며 동의하지 않는다.

영국의 가정교육도 실용적이다. 홍보대행사 메리트·버슨 마스텔러의 마이클 브린 부사장은 지난해 초등학생인 두 아들이 서울에 오자 아이들의 저금 중 일부를 찾아 한국 기업의 주식을 10주씩 사주었다. 주가의 오르내림을 통해 시장이 움직이는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브린 부사장은 "그 주식으로 2만원의 차익을 냈다"면서 "어릴 때부터 실용적인 경제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재미있게 가르치고=이론 중심의 경제교육은 아무래도 딱딱하고 지루하다. 미국 경제교육협의회(NCEE)는 경제교육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각급 학교에 보급한다.

예컨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선 '플레이 도(play dough·인조찰흙)' 게임을 통해 산업의 중요성과 기회비용 개념을 가르친다. 또 역할극 놀이를 하면서 경제활동의 효율성을 이해하고, '무역전쟁 놀이'를 하며 국제무역의 원리와 환율 변동을 배운다.

<그래픽 참조>

"'외제품 구입=사치'라며 국산품 애용을 권장하거나 근검절약을 부르짖는 우리 학교의 경제교육은 문제가 있다. 선진국에선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아 자원의 희소성이나 기회비용, 분업과 비교우위, 국제무역과 기업가 정신 등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재미있게 체계적으로 가르친다."(천규승 한국개발연구원 경제교육팀장)

일본의 학교 교육도 일본의 경제구조와 현실 경제를 이해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최근 일본IBM 등 기업의 지원을 받아 전국 1백여개 초·중·고교에서 '모의회사 경영 프로그램'을 교과목에 넣어 가르치고 있다.

◇기업·지역사회가 함께 나선다=미국은 정부와 기업의 전폭적 지원 아래 다양한 경제교육을 한다.

"외국에선 은행·카드회사 등 금융회사들이 경제교육에 앞장선다. 신용질서를 세우려면 미래의 고객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김영종 비자코리아 사장).

1919년 설립된 비영리단체 JA(www.ja.org)는 '청소년의 경제적 성취(Junior Achievement)'를 슬로건으로 4백만명의 학생에게 경제교육을 하고 있다.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시장경제 원리를 피부에 와닿는 사례를 통해 가르친다.

네덜란드에선 청소년을 대상으로 범사회적인 저축장려운동을 벌인다.

"열두살이 되면 모든 어린이가 자기 통장을 갖고 저축을 시작한다. 중도해약 없이 10년 동안 저축하면 원금에 50%의 이자를 얹어준다. 청소년의 저축을 장려하는 사회적 합의 때문에 가능하다."(대학생 루크 위잉크)

특별취재팀=양재찬 전문기자, 이재광·신예리·김동호 경제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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