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컨 vs 에렌하프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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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자연에 존재하는 전기량에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값이 존재한다는 것은 요즘 고등학생이면 다 아는 얘기다. 전자 하나, 또는 양성자 하나가 갖는 전기량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20세기 초 물리학계에서는 이 '기본 전하량'을 둘러싸고 잘 나가던 물리학자 두 명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미국의 로버트 밀리컨(1868~1953·(上))과 오스트리아의 펠릭스 에렌하프트(1879~1952·(下))가 주인공이다.

논쟁이 한창이던 1910년대만 해도 에렌하프트의 명성이 밀리컨을 압도했지만, 결과는 밀리컨의 KO승이었다. 밀리컨은 기본 전하량을 측정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으나 에렌하프트는 정신적으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됐다.

밀리컨은 우리 고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실험 방법으로 '기본 전하량'을 쟀다. 그러나 에렌하프트는 그보다 더 작은 전하량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에렌하프트는 기본 전하량의 5분의 1,10분의 1,1백분의 1짜리 전하량도 측정했다고 계속 발표했고, 마침내 얼마든지 0에 가까운 전하량이 존재하므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 전하량' 같은 것은 세상에 없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에렌하프트의 연구를 검토해 보면, 그는 실험에서 나온 자질구레한 값들에 너무 매달렸던 것 같다. 오차값을 중요한 데이터로 여기고 의미를 부여했던 것. 시간이 흘러 많은 물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밀리컨이 지지를 받고, 결국 노벨상까지 차지하자 에렌하프트는 그만 정신건강을 해쳤다.

사실 노벨상 수상자인 밀리컨에게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처음 연구결과를 발표할 때, 실험에서 얻은 1백40개의 데이터 중 결과가 그럴듯하게 나온 60개만으로 '기본 전하량'을 계산하고 나머지는 버렸던 것. 이때문에 당시에도 일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밀리컨은 데이터를 버린 사실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밀리컨의 사후인 80년대 들어 그의 실험노트를 조사한 사람들이 실제 밀리컨이 마음에 안 드는 데이터 일부를 버렸음을 확인했다. 그랬음에도 그는 노벨상까지 안아 살아 있을 때 과학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이것 말고도 에렌하프트는 또 하나, 지금 보면 황당한 생각마저 드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른바 '자기 단극자'를 발견했다고 해서 물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 자석은 N극과 S극이 항상 쌍으로 함께 있는데, N극이나 S극 하나만 따로 존재할 때 이것을 자기 단극자라고 한다. 물론 이런 자기 단극자는 없다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결론이다.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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