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유럽 앞선 건 다민족·혼혈사회의 창의성 때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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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22면

“현재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 숫자가 115만~120만 명을 헤아린다. 앞으로 10~20년 사이 이들 외에 추가로 200만 명의 이민을 더 받아야 한다.”윤종용(66·사진)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현 추세라면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때문에 성장잠재력이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며 적극적인 이민 개방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200만 명 이민 받자” 주장하는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

윤 고문은 또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오늘날처럼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큰 문제일 수도 있다”며 “발전하고 창의적인 사회와 조직을 만들기 위해 혼혈사회와 민족융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회장은 “(나의 주장에 대해) 사회적인 저항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누구든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10년 가까이 지낸 윤 고문은 이공계 출신 최고경영자(CEO)와 엔지니어·교수 모임인 한국공학한림원의 회장이기도 하다.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서울 태평로빌딩 집무실에서 1시간가량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중앙일보 경제 월간지 포브스코리아와 인터뷰에서 “아시아계 이민 200만 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네 가지 이유 때문에 그 말을 했다. 첫째, 한국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016년부터 감소한다. 둘째, 그렇지만 현 출산장려책으로 인구 감소를 막기는 어렵다. 셋째, 사회가 개방되고 이문화가 유입돼 혼혈사회가 돼야 발전하고 글로벌화된다. 발전하고 창의적인 사회와 조직은 혼혈사회다. 넷째, 지금 당장 청년 실업과 중장년 실업 등으로 사회 문제가 많지만 이것은 지금의 문제다. 20~30년 후에는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국가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경제인구가 줄어들면 성장잠재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지금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 20~30년 후 문제에 봉착하면 그때부터는 40~50년이 지나도 해결이 안 된다.”

-왜 혼혈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나.
“미국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부분 유럽에서 이민 간 사람들이 만든 나라다. 그런데 유럽보다는 미국이 훨씬 창의적이고 더욱 발전하고 있다. 혼혈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여러 민족과 문화가 모여서 갈등도 일으켰지만 서로 장점을 따고 젊고 우수한 사람들을 계속 받아들여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다른 문화가 섞이면 갈등도 발생하지만 장점도 딸 수 있다. 정반합이다. 그게 변화가 없는 단일민족보다 낫다. 나는 단일 민족주의라는 게 제일 문제라고 본다. 우리가 한 민족이라고 좋아할 수 있지만 오늘날처럼 글로벌 경쟁을 하고 창의력이 중시되는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왜 200만 명을 받아야 하나.
“줄어드는 인구를 대체하기 위해서다. 한국 인구는 현재 4890만 명에서 20년 후 25만 명이, 30년 후인 2040년에는 250만 명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자 문화권 국가에서 남녀 각각 100만 명 정도를 받아들인다면 이들이 결혼해 아이를 세 명씩 낳으면 300만 명의 신생아가 출생한다. 30년 후 250만 명 줄어드는 것을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현재 인구의 4~5%를 이민으로 유입하자는 거다. 미국은 순이민율(전체 인구 대비 순유입된 이민자 수의 비율)이 1%포인트 증가하면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이민이라는 것이 대단하다.”

-국내에 사는 외국인들은 아직까지 한국에서 살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외국인이 살기 어려운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 한국은 일본·독일과 더불어 세계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국가 중 하나다. 특히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하는데 절대 좋은 게 아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2009년에 조사한 외국문화 개방도 순위를 보면 57개국 중 한국이 56위를 차지했다. 나도 세계 각국을 많이 다녀봤는데 우리나라가 참 폐쇄적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단일 민족주의는 오늘 같은 글로벌화 시대에는 국가발전을 저해한다. 사회의 개방성과 외국인에 대한 관용성은 국가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국민이 공감하고, 인식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초·중·고 교육과정에서부터 이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을 교과서에 넣는다거나 해서 교육시켜야 한다.”

-한국에 살려고 오는 외국인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
“한국에 이민 오는 부류를 셋으로 나눌 수 있다. ▶단순기능인력 ▶농어촌 중심의 결혼이민 여성 ▶고급인력 중심의 영주권 취득 이민이 그것이다. 어느 경우든 한국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사회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를 지금부터라도 구축해야 한다. 특히 농어촌 중심의 결혼 이민 여성은 본인과 자녀 교육에 대해 국가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투자해야 한다. 이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20~30년 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농어촌에 시집온 사람들은 결혼상담소를 통해 결혼한다는데 이것도 처음부터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오면 일정기간 교육도 시켜야 한다. 부모가 적응해야 애들도 제대로 적응할 수 있다. 외국인과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이 벌써 10만 명이다. 이 아이들을 정부가 별도로 돌봐줘야 한다. 20년 후 이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로 내팽개쳐져 있다고 생각해보라. 정말 심각한 문제다. 그들이 잘돼야 우리 사회도 잘될 수 있다.”

-‘한국형 다민족사회’의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한다면.
“미국과 같은 다민족·혼혈사회로 만들어가는 게 좋겠다. 미국은 엄청난 갈등을 예상하고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잘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도 이에 맞는 제도 정비와 국민의식에 신경 써야 한다. 미국에 가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꿈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많은 동남아인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왔는데 그걸 이룬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 공장에서 일하다 다친 사람도 많고 착취당하고 월급도 못 받고 쫓겨간 사람들도 많다. (악덕 고용주를) 법으로 엄중하게 다스려야 한다.

돌아가서 한국 욕하는 동남아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우리가 제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이므로 그들을 친한파로 만들어야 한다. 이민 온 사람들의 사회적 신분이 상승할 수 있는 제도와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미국도 자기만 노력하면 사회적인 신분을 올릴 수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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