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단 공백 파리가 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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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경기가 끝날 무렵 내리기 시작한 비는 프랑스의 '눈물'이었다.

아프리카의 '검은 사자' 세네갈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그라운드를 뛰어다녔다.

세계랭킹 1위 프랑스는 경기가 끝나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세네갈의 브뤼노 메추 감독은 전날 인터뷰에서 "세네갈이 프랑스를 꺾는다는 건 기적이 아니다. 도전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세네갈은 거함에 맞서 깜짝 놀랄 만한 이변을 만들어 냈다.

이달 초 프랑스가 홈인 파리에서 벨기에에 1-2로 패할 때만 해도 프랑스 선수들은 "큰 의미가 없다. 좋은 경기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기대 이하의 플레이를 보이며 간신히 3-2로 승리했을 때도 프랑스는 애써 충격을 감추려고 했다.

그러나 팀의 기둥인 지네딘 지단이 허벅지 부상으로 개막전에 나오지 못하게 되자 세네갈을 연습경기 상대 정도로만 평가하던 프랑스 언론에서 '개막전 걱정'이 슬슬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야전사령관 없는 프랑스 군대가 젊고 빠른 세네갈 특공대를 감당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과연 그랬다. 지단이 없는 프랑스는 특유의 조직력도, 예술에 가까운 공·수 연결도 보여주지 못했다.

더구나 프랑스는 전날 "굳이 시간낭비할 필요 없다"며 월드컵 경기장에서 훈련을 하지 않았다. 경기 당일에 공을 차보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개막전 행사 관계로 경기 시작 전 충분히 몸을 풀 만한 시간이 없었다.

반면 세네갈 선수들의 플레이에선 오히려 챔피언 같은 여유가 흘렀다. 특히 세네갈 공격의 시작이자 끝인 엘 하지 디우프(랑스)는 단연 발군이었다. 디오프와 투톱으로 나선 디우프는 포지션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미드필드와 최전방 좌·우를 휘젓고 다니며 프랑스의 막강 포백을 조롱했다.

디우프는 전반 1분 프리킥을 헤딩으로 연결하며 프랑스 골문을 노크한 것을 시작으로 5분에는 프랑스 리자라쥐를 제치고 오른쪽 진영을 돌파해 문전에 찬스를 내줬다.

잔뜩 웅크리고 있다 미드필드에서 상대 공격을 끊어 바로 매서운 역습으로 연결하던 세네갈에 마침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시작은 역시 디우프에게서였다. 어느새 왼쪽 날개에 자리잡은 그는 프랑스의 르뵈프를 가볍게 제치고 20여m를 치고 들어가 크로스했고, 프랑스 수비와 골키퍼 바르테즈 몸에 맞고 퉁긴 볼을 디오프가 넘어지면서 차넣었다. 골 그물이 출렁거렸고 경기장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가득찼다.

첫 골을 빼앗긴 프랑스 선수들은 더욱 초조해 보였다. 좌측 윙백인 리자라쥐가 부지런히 오버래핑을 시도했고, 중앙 수비수 마르셀 드자이까지 공격에 나섰지만 골문 앞에 매복한 세네갈의 배수진을 뚫기는 힘들었다.

후반 들어 조르카에프 대신 크리스토프 뒤가리(보르도)를 넣으며 꽉 막힌 듯 답답한 경기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후반 20분 앙리가 멋지게 감아찬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오는 등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후반 종료 직전 앙리가 날린 회심의 슈팅이 다시 한번 골키퍼 실바의 손에 달라붙으면서 프랑스 선수들은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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