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붙는 保革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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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한의 통일방식에 대해 언급한 6·15 남북 공동선언 제2항을 둘러싸고 청와대·민주당과 한나라당이 23일 충돌했다. 한나라당 이회창(會昌)후보가 전날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집권하면 2항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라고 말한 것이 불씨가 됐다. 이 논란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노선과 정책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는 것이어서 대선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그동안 청와대는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을 인정한 2항에 대해 "북한이 우리측 통일방안에 가까이 다가온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남북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은 "북한은 고려연방제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2000년 6월 17일 여야 영수회담)고까지 했다.

하지만 북한은 고려연방제를 녹음기 틀듯 되풀이했다. 때문에 2항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 내부에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이 딴소리를 하는데 무슨 말이냐"는 것이다. 후보는 토론회에서 "북한이 연방제를 하기로 한 것처럼 계속 주장할 경우 2항은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토론 말미에 '폐기'라는 말을 '짚고 넘어간다'로 정정했다. 그는 23일 토론회에서도 "내가 대통령이 되면 서로 검토해 명확히 할 부분"이라고 거듭 밝혔다.

"북한의 연방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공동선언은 이 문제를 짚지 못했다"(2000년 6월 19일 기자회견), "북한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종국적으로 연방제로 가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같은해 12월 15일 경희대 특강)는 등 후보의 지나간 발언에서도 그런 의지가 묻어나온다.

후보는 '공동선언 2항 재점검=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임을 내세워 DJ의 햇볕정책에 실망한 계층과 보수층을 공략할 방침이다.

청와대는 후보의 이런 전략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金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히는 남북 공동선언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민주당 노무현(武鉉)후보도 마찬가지다. 그는 다른 것은 몰라도 햇볕정책만큼은 DJ와 차별화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젊은층과 진보진영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지지를 얻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가 23일 의원 워크숍에서 후보를 "냉전논리와 분단적 사고를 가진 인물"이라고 비난한 까닭도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남북관계는 얼어붙고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는 점을 집중 홍보할 방침이다. 결국 올해 대선전은 지역·세대간 갈등에다 보혁·좌우갈등까지 한꺼번에 표출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일 기자

<6·15 남북 공동선언 제2항>

(남북정상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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