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선의'狐假虎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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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DJ의 3남 홍걸. 이희호 여사가 마흔 넘어 낳은 늦둥이다. 그는 사람을 극도로 기피한다. 마음을 안 연다. 그러나 한번 좋아한 사람에겐 푹 빠져든다. 기댈 데가 필요한거다. 아버지의 고난이 물려준 마음의 상처다.

홍걸은 집에서 말이 없었다. 어쩌다 말할라치면 퉁명스러웠다. 여사가 뭐를 물어봐도 대답조차 안했다. 권노갑·김옥두씨를 만나도 "오셨어요"가 전부였다. 그에겐 이렇다할 친구도 없었다. 그저 미국 NBA농구나 미식축구에 심취했다. 남들이 관심없는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퍼즐과 컴퓨터 게임은 수준급이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니 그런 것만 했다. 홍걸의 한 측근은 그를 "공기 같은 남자"라고 표현했다. 그 정도로 투명했단 얘기다.

최규선-. 홍걸과는 정반대되는 인물이다. 사교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역대정권의 실세들을 찾아다녔다. 5공 때는 전경환씨와 연결됐다. YS때는 최형우씨를 도왔다. 대통령의 친동생이나 최측근이다.

"본인이 자랑하듯 그렇게 얘기했어요. 최형우와 빌 게이츠의 만남도 자기가 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확인해볼 사안은 아니잖아요." 그를 아는 청와대 인사의 전언이다.

최규선의 학력은 불투명하다. 본인은 버클리대 박사라고 한다. 스칼라피노 교수가 지도교수라고 했다. 그러나 정권 초기 그를 면접한 김중권 전 청와대비서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이상했어요. 내가 상식선에서 스칼라피노 교수의 전공분야에 대해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엉뚱한 대답을 하더군요. 나참."

경력 또한 불투명하다. 金실장은 최규선의 신원조회를 해봤다 한다. 그랬더니 사기혐의로 입건된 적이 있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몇가지 송사에 말려 있었다. 金실장은 최규선을 불렀다.

"당신이 청와대에서 맡을 일은 없는 것 같소."

최규선의 청와대 입성은 그래서 좌절됐다.

그러자 최규선은 홍걸에게 더욱 다가갔다. 안어울릴 것 같은 두사람이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홍걸의 귀국 빈도는 높아졌다. 그러던 어느날 홍걸은 청와대 관저로 오지않고 외박을 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사의 걱정은 대단했다. 홍걸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공부나 하라고 충고해달라"고 부탁했다. 직접 나무라지는 못했던 것이다.

여사는 늘 그래왔다. 홍걸의 상처를 건드릴까 봐서다. 홍걸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랬다. 홍걸도 자기 아들 때문에 똑같은 마음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걸의 아들도 홍걸의 어린 시절과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여사는 홍걸이 최규선과 어울리는 것을 몰랐다. 물론 몇몇은 홍걸에게 최규선과의 관계 정리를 권유했다. 그러나 홍걸은 그때마다 최규선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결국 충고한 사람만 홍걸과 멀어졌다.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 김중권 실장도 최규선문제를 계기로 당과 갈등을 빚었다고 했다.

최규선은 문제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았지만 아무도 못막았다. 그가 홍걸을 업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은 위험한 거다.

그는 한나라당에도 접근했다. 이회창대세론이 한창일 때다. 측근과 혈육이 공략목표였다. 새로운 사업의 시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 이쯤에서 드러났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하는 우리 정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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