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 허가받기 너무 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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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경기도 성남시 태평1동에 사는 이인종(李仁鍾·68·부동산중개업)씨는 지난해 8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조성한 문중 납골묘에 대한 보도(본지 2001년 8월 25일자 27면)가 나가자 3백여통의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고 밝혔다.

"문중 납골묘를 만드는 절차가 어떻게 되느냐""어디에 물어봐야 하느냐" "근거 법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李씨는 비슷한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현장까지 안내하느라 자신의 일은 뒷전으로 미뤄야 했다.

李씨는 문중 납골묘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잠재 수요에도 불구하고 안내 창구가 없는 것이 안타깝고 자신이 겪었던 고충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무슨 방법이 없느냐"고 문의해왔다.

이에 본사 취재진은 李씨 및 문중 납골묘를 추진하고 있는 독자와 함께 李씨의 문중 납골묘를 둘러보며 문제점을 짚어보고 보건복지부 등 관계 당국의 대책을 취재했다.

◇실태=지난 21일 낮 12시쯤 경기도 연천군 중면 합수리 82번지 3백평 남짓한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백석 종중의 문중 납골묘를 찾았다. 유럽의 공원묘지를 연상시키는 평판식 납골묘가 가지런하다. 李씨는 "5~6개 산에 흩어져 있던 1백30여기의 매장묘를 모두 화장해 3백평에 안치했다"고 말했다.

문중 납골묘 조성을 앞두고 현장을 돌아보던 김동진(金東振·60·사업가)씨는 "작은 부지에 많이 모실 수 있는 데다 벌초도 간편하기 때문에 요즘 시대에 가장 적합한 묘지 형태"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문중 납골묘를 짓기까지 李씨의 고충은 적지 않았다. 李씨는 열 묶음이 넘는 자료를 꺼내 보이며 "처음 추진할 때인 1997년엔 절차나 법규에 관해 문의할 곳이 없었다"면서 "혼자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일일이 자료를 구해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문중 납골묘에 대한 인식이 낮은 데다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도 "민간 차원의 일"이라며 별 대책 없이 뒷짐을 지고 있었다고 한다.

옆에서 얘기를 듣던 金씨는 "지금도 그때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고 거들었다. 어렵사리 자료를 구해 관할 관청을 찾아가면 담당 공무원조차 문중 납골묘에 관해 잘 몰라 민원인의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이다.

李씨는 납골묘 부지를 허가하는 까다로운 법규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현행 법규상 문중 납골묘는 민가 20호가 넘는 지역으로부터 5백m 이상, 도로·철도·하천에선 3백m 이상 떨어져 있어야 조성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도로법과 고속국도법, 하천법과 농지법, 도시계획법과 장사 등에 관한 법률 등 제한 법규가 많아 현실적으로 적당한 부지를 찾는 일이 어려운 형편이다.

李씨는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에 엄연히 선산이 있는데도 이곳에 새로운 부지를 사들여야 했다"며 이런 경우 돈이 없어 납골묘 추진을 포기하는 문중도 상당수라고 했다.

◇문제점=현재 전국에서 추진 중인 문중 납골묘는 수백건에 이른다. 그러나 상당수 문중이 납골묘 부지에 대한 까다로운 법적 요건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역 실정에 맞게 탄력적으로 법규를 적용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장이 따로 조례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중 납골묘에 대한 자치단체의 관심 부족으로 별도의 조례를 만든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박복순 사무총장은 "심각한 묘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중 납골묘 조성에 관한 적극적인 홍보와 법적인 지원이 시급하다"며 "가령 선산의 경우 그린벨트라 하더라도 납골식 전환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책마련 약속=보건복지부는 인터넷 홈페이지(www.mohw.go.kr→실국별 홈페이지→가정보건복지→민원응답 모음)에 실린 문중 납골묘 관련 민원 응답란을 정리해 필요한 민원인들에게 도움을 줄 계획이다. 또 납골묘 관련 조례 제정에 대해 자치단체가 관심을 가져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할 방침이다.

이밖에 납골묘를 조성하는 선산의 경우 그린벨트에서 풀어주는 방안을 건설교통부 등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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