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對테러전 공조 상반된 기류 : 유럽 '삐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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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과 유럽의 대(對)테러전 공조체제에 균열 조짐이 보이고 있다.유럽이 이라크 공격 계획과 '악의 축' 발언 등 미국의 일방주의 노선에 연일 반기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부시 대통령은 동북아 3개국 순방을 통해 아시아와의 결속을 강화하는 데 더욱 힘을 쏟고 있다.

독일의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은 18일자 슈피겔지와의 회견에서 "대테러전 수행을 위한 국제연대가 특정국가에 대한 공격을 허용하는 면허장은 아니다"며 미국의 이라크 공격계획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프랑스 고위 관료들도 '악의 축' 발언을 거듭 비난하며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지했던 위베르 베드린 외무장관은 지난 6일 부시 행정부를 '단선(單線)주의'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몰아붙였다. 이틀 뒤엔 리오넬 조스팽 총리와 알랭 리샤르 국방장관까지 가세해 비난의 화살을 당겼다. 이같은 비난이 못마땅한 듯 미국은 지난 15일 프랑수아 뷔종 드 레스탱 주미 프랑스 대사를 초치, 프랑스의 입장을 따져 묻기도 했다.

미국의 맹방인 영국의 잭 스트로 외무장관도 이달 초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는 올 가을 중간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며 '악의 축' 발언에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음을 시사했다.영국 출신으로 유럽연합(EU)대외관계 집행위원인 크리스 패튼은 15일자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문에서 "군사력의 과시만이 안보의 기초이고 미국의 동맹국들은 '엑스트라'로 필요하다는 위험한 본능들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고 개탄했다.

유럽 각국의 우려와 비난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독자적 전쟁 수행능력을 입증한 '슈퍼 파워'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베를린·파리=유재식·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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