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국의 역내 리더십 확인할 천안함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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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중국은 기존의 신중한 입장에서 일부 변화를 보였다. 왜냐하면 중국이 내부적으로 북한의 행동에 대한 실망감이 있었고, 책임대국론을 표방한 상태에서 국제사회의 요구를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웠으며,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구축한 한국의 입장도 함께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자바오 총리가 한국과 각국의 반응을 중시하고 조사결과에 따라 누구도 비호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것은 적어도 중국의 태도가 중립적으로 바뀌었다는 징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 사건이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에 근거하여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밝힘으로써 북한책임론을 피해갔다. 이것은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중국식 검증’과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어떠한 행위도 반대하고 규탄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6자회담과 천안함 사건을 분리해 처리하겠다는 기존 입장도 반복했다. 이 또한 사건의 책임규명보다는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었다.

그렇다면 중국이 왜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가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우선 중국의 대북정책은 보다 큰 틀에서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현상(status quo)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북 핵실험 이후 유엔의 대북제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도 중국이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를 구분해 접근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천안함 사건과 같은 ‘북한문제’에 대해선 외교부보다는 공산당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다. 그동안 당은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등을 포함해 일련의 북·중관계 회복 프로그램을 주도했다. 이들의 대북인식은 북한이라는 전략적 자산을 중시하는 전통파의 입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북한에 대한 고립과 압박 정책으로 인해 미·중 간 협조체제에 균열이 나타날 것을 중국은 우려하고 있다. 즉 중국은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연루의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를 원한다. 원자바오 총리가 “한반도에서 충돌이 생기면 가장 피해를 보는 쪽은 북한과 한국, 그리고 중국”이라는 발언도 중국의 딜레마를 솔직하게 드러낸 것이다.

요컨대 중국은 천안함 사건이 지닌 ‘정치적 민감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매우 신중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북 핵실험 국면에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사용하는 순간 없어지는 역설적 상황을 학습했기 때문에 완충장치 없이 유엔안보리의 북한제재에 참여하는 데에는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은 부상한 중국의 책임대국론과 역내 리더십을 확인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그 핵심은 중국이 북한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 상응하는 책임을 물으면서도 한반도 상황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향후 한반도에서 중국역할론의 깊이와 폭을 결정하는 변수가 될 것이다.  

다른 한편 중국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도 많은 외교적 과제를 던지고 있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법이다. 더구나 중국의 대외정책, 특히 한반도정책은 북한변수 때문에 한꺼번에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한·중 정상회담 이후 자기충족적 발언을 쏟아내는 것이나, 상대방의 외교적 수사를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행보를 스스로 제약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새롭게 제기될 의제와 돌발적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것을 어렵게 할 뿐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적어도 몇 단계 앞을 내다보면서 정교하게 전략적 지혜를 짜내는 일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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