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는 아이에게 엄마 되어준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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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옥선 교사(왼쪽)가 지난해 5월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는 학생들과 대전 한밭수목원을 찾았다. 학년 말‘한 해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아이들은 이 나들이를 꼽았다. [이옥선 교사 제공]

‘엄마가 없는 나에게도 새로 엄마가 생겼다. 학교에만 오면 엄마가 있다. 준비물이 없어도, 장난 치다 화분을 깨뜨려도, 친구와 싸워도 화를 내시지 않고 먼저 내 마음을 걱정해 주는… 우리 선생님이다.’

대전 신탄진용정초등학교 3학년 정모(9)양은 지난해 5월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엄마 같은 우리 선생님’이라는 글로 교육장상을 탔다. 지난해 정양의 담임을 맡았던 이 학교 이옥선(49) 교사가 글의 주인공이다.

정양은 가출한 어머니 대신 동생 둘을 돌봐야 하는 처지였다. 같은 반 아이들은 잘 씻지 못하고 다니는 정양과 어울리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마침 담임을 맡아 사정을 알게 된 이 교사는 정양의 ‘엄마’를 자청하고 나섰다. 수업이 끝난 후 정양을 불러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방법을 자상하게 알려줬다. 이 교사는 “수업시간에는 일부러 발표를 많이 시키고 칭찬을 해줬더니 매우 빠르게 자신감을 찾더라”고 말했다. 올해 정양이 3학년이 되면서 담임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고민거리를 함께 나누는 ‘모녀지간’으로 지내고 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이 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공부를 하던 정양은 이 교사가 들어서자 달려가 품에 안겼다. 정양은 “목소리가 예쁘다고 늘 말씀해주신 선생님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커서 꼭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말했다.

청주교대를 졸업하고 1981년 처음 교육계에 발을 디딘 이 교사는 4년 뒤 결혼과 함께 퇴직했다. 그러다 남편과 사별하면서 93년 재임용시험을 봤다. 어린 아들 둘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이 교사는 “나 자신도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인지 부모 없이 자라거나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접하면 바른 길로 이끌어야겠다는 의지가 솟아나곤 한다”고 말했다.

그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남학생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하던 94년의 일이다. “폭력서클에 가입한 아이였는데 중·고생 형들이 잘못을 저질러 놓고는 그 애에게 뒤집어 씌워 경찰서를 들락거리기 일쑤였어요. 그래서 ‘형들에게 맞아서 다리가 부러져오면 내가 깁스를 해줄 테니 탈퇴하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정말로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자신을 찾아온 아이를 껴안고 이 교사는 펑펑 울었다. 그해 1년 동안 이 교사는 자신의 큰아들처럼 이 학생을 돌봤다. 방과후 축구팀의 골키퍼로 뛰게 했고, 나들이 때면 가족처럼 동행했다. 집에 데려가 같이 생활하기도 하고 생일상도 직접 차려 줬다. 잘 적응한 아이는 별탈 없이 중학교에 진학했다.

이 교사는 2007년 1학년으로 입학한 발달장애 아동을 돌보려고 2학년 때까지 일부러 담임을 맡기도 했다. 지적 수준이 서너 살 정도여서 아이들이 짝궁 하기를 꺼려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학년 말에는 짝궁을 한 학생의 부모가 ‘오히려 우리 아이가 많은 것을 배웠다’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제29회 스승의 날인 15일 이 교사는 옥조근정훈장을 받는다. 이 교사는 “하루를 살더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교단에서 실천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성탁·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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