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김홍재·박태영 고국 무대 나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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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최근 재일동포 2세 지휘자들의 고국 무대 진출이 눈부시다.

1999년에 국내에 데뷔한 지휘자 박태영(37)과 지난해 뒤늦게 고국무대에 선 김홍재(46)가 그 주인공들. 이들은 굵직굵직한 국내 초연작을 선보이면서 국내 악단의 지휘자 기근 현상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조총련계 교사(김홍재)와 조총련 간부(박태영)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이젠 조국을 자유롭게 왕복하면서 '예술의 자유' 를 만끽하고 있다.

박씨는 러시아 유학시절 만난 플루티스트 이상미(뉴서울필 단원)씨와 지난 4월 결혼해 아예 서울에 살림을 차렸다.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김씨는 지난해 10월 아시아.유럽 정상회담(ASEM) 축하공연에서 KBS교향악단을 지휘,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함께 부조니의 '피아노협주곡' 을 국내 초연하면서 고국 데뷔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김씨의 서울나들이는 올들어 부쩍 잦아졌다. KBS교향악단(4월).코리안심포니(6월)를 객원지휘한 데 이어 오는 10월 3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 무도회' 의 지휘를 맡았다. 김씨가 오페라 무대에서 지휘봉을 잡는 것은 데뷔 2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평소 관현악곡을 지휘할 때도 감정과 극적인 처리에 특히 비중을 두는 편이에요. 고국 무대에서 처음 오페라 지휘를 맡아 남다른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김홍재를 가르쳤던 작곡가 윤이상은 그를 가리켜 "대담하면서도 섬세하고, 신비적이면서도 활력에 넘친다" 고 말한 바 있다. 오페라 지휘에 적격이라는 말이다.

오페라 공연이 끝나면 11월 12일 코리안심포니를 맡아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을 들려줄 계획도 잡혀 있다.

고국을 주무대로 삼은 박태영씨의 스케줄은 더욱 빡빡하다. 전주시향과 서울시청소년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있으면서 서울시향.코리안심포니.대구시향.대전시향 등을 객원 지휘했고, 뉴서울필하모닉의 정기연주회 지휘도 그의 몫이다.

박씨는 오는 10월 12일 전주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전주세계소리축제 전야제에서 전주시향과 함께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을 연주한다.

또 이에 앞서 10일엔 전주시향을 이끌고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다. 세계소리축제의 홍보를 겸한 서울나들이다. 한국 초연인 쇼스타코비치의 '숲의 노래' 와 슈니트케의 '한여름밤의 꿈' 을 비롯,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4번' (협연 김남윤),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 등을 연주한다.

'숲의 노래' 는 테너.바리톤 독창자와 성인.어린이 합창단 1백30명이 출연하는 7악장짜리 매머드 작품. 러시아어 가사를 직접 번역한 박씨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무를 심고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희망적인 내용을 담은 곡" 이라고 설명했다.

바쁜 일정 중에서도 그에겐 빨리 이뤄야할 한가지 꿈이 있다.

"지난해 계획했다 무산된 '통일' 주제의 음악회를 열고 싶습니다. 남북한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리는 것이지요. "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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