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내 ‘엘리트 판사 모임’ 민사판례연구회 명단 곧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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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법원 내에서 ‘엘리트 판사들의 조직’으로 불려 온 민사판례연구회는 이달 중순 발간하는 논문집 『민사판례연구』에 전체 회원 명단을 게재할 예정이라고 7일 밝혔다. 회원 선발의 경우 기존 회원의 추천을 받는 방식에서 신청 후 심사를 거치는 형태로 바꾸기로 했다.

회장인 서울대 윤진수(법학) 교수는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1977년 연구회 결성 이후 활동을 비밀로 한 적이 없었지만 오해를 불식시키는 차원에서 활동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며 “신입 회원 가입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민사판례연구회는 회원 출신 판사들이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등 사법부 요직에 임명되면서 ‘폐쇄적인 특권집단’이란 비판을 받아 왔다. 현재 회원 수는 18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회원이던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 4명이 ‘법원 행정을 맡은 상황에서 단체 활동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최근 연구회를 탈퇴했다”고 전했다.

이 모임은 77년 한국 민법의 대가인 곽윤직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가 제자인 판사와 교수들을 모아 결성했다. 곽 교수는 79년 논문집인 『민사판례연구』 1권의 머리말에서 “뜻을 같이하는 학계·실무계 31명이 조직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결성 후 30여 년간 매년 10차례 월례 발표회와 하계 심포지엄을 열어 왔다. 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사망 직후 한 차례 열지 못했을 뿐이다. 비상계엄 중이던 80년에도 경찰에 집회신고까지 내며 발표회를 열었다. 현재 31권째가 나온 『민사판례연구』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법원 내부에서는 ‘폐쇄적인 엘리트 조직’이란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기존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만 신입 회원을 뽑는 선발 방식 때문이었다. 비(非)서울대 출신 가입을 허용한 것은 몇 년 전부터다. 87년과 97년 논문집에 회원 명단을 게재했지만 이후엔 신입 회원을 소개하는 데 그쳤다.

특히 연구회 출신 판사들이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법원행정처 주요 보직에 중용되면서 ‘사법부 내 하나회’란 소리를 들었다. 대법원에선 이용훈 대법원장과 양승태·차한성·양창수·민일영 대법관이, 헌법재판소의 경우 이공현·목영준 재판관이 이 모임 출신이다. 김황식 감사원장과 박우동·이임수·서성·손지열·박재윤·김용담 전 대법관, 권성 전 재판관 등이 역대 회원 명단에 올랐다.

대법원 측은 다른 연구단체들이 자율적으로 활동 방식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사판례연구회와 함께 대표적인 법원 내 단체로 부각돼 온 우리법연구회도 회원들의 명단을 공개키로 했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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