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기영 삼성금융연구소 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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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근 원화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원화가치 하락)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일본 엔화 환율의 상승 때문이다.

일본은 엔화 환율의 상승을 통해 수출 확대와 국내 물가 상승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도 달러 강세로 수입물가를 안정시켜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여지를 만들려 하고 있다. 경기가 둔화돼 수입 수요가 줄고 있는 미국이 당분간 엔화 환율의 상승세를 용인할 가능성이 크다. 수출에 진력하는 아시아 국가들도 엔화 약세에 맞춰 자국 통화의 약세를 내버려두고 있다.

이에 따른 원화 환율의 상승세는 가뜩이나 경기가 위축된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 오름세 압력으로 저금리 정책의 기조가 흔들리고, 위축된 기업의 투자심리는 수입물가의 급등 등으로 더욱 얼어붙고 있다.

또 아시아 통화의 동반 약세 때문에 원화 환율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수출증대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반면 기업과 금융기관의 외채상환 부담이 크게 늘어나고 외국인의 직.간접 투자도 급격히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지난주 이례적으로 외환시장에 대한 직접개입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여러가지 여건상 상승 압력이 큰 환율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얼마나 조정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외환 및 자본 자유화가 이뤄진 상태에서 경제 기초여건과 동떨어진 환율정책은 오히려 국제 투기세력을 불러오게 된다. 외환보유액을 통한 시장 개입으로 환율을 조정하면 도리어 투기꾼에게 보유 달러를 헐값에 넘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정부의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이나 구두 개입이 일시적으로 환율 상승세를 멈출 수 있을지 모르나, 국제적인 달러강세 분위기 속에서 원화 환율의 상승 압력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문제다.

특히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환율안정에 실패할 경우 외환보유액의 감소뿐 아니라 정책에 대한 신뢰감이 크게 훼손돼 오히려 화를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원화 환율의 비정상적인 상승세는 기본적으로 시장기능에 의해 자율적으로 조정돼야 한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시장의 자율조정 기능이 실패해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시작되면 당초 의도했던 대로 환율을 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신속하고 강력하게 개입해야만 환율정책의 실효성과 신뢰성이 확보된다. 미흡한 구조조정과 국내 경기에 대한 불안심리 등도 환율 불안의 원인인 만큼 시장개입 등의 환율정책보다 경제의 근본적인 불확실성 해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기영 삼성금융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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