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CEO의 한식 만들기 ③ 위르겐 쾨니히 머크 한국지사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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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쾨니히 대표가 자신이 만든 잡채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정치호 기자]

“잡채는 매우 창조적인 음식입니다. 쇠고기 대신 닭고기나 해산물을 넣어 볶고 버무리면 완전히 새로운 맛이 탄생하죠. 여기에 커리(curry) 가루로 양념을 더하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습니다.”

독일계 다국적 화학·제약회사인 머크의 위르겐 쾨니히(Jürgen König·56) 한국지사 대표이사는 주한 외국인 사회에서 ‘요리하는 남자’로 소문이 나있다. 브라질 상파울루 출신으로, 머크의 파키스탄 지사 대표로 10년간 근무한 뒤 2008년 한국 머크의 사장으로 부임한 그는 요리하는 게 취미다.

회사의 임원들이 바뀔 때마다 집으로 초청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부엌에서 함께 양파를 썰고 마늘을 까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되고 회사 경영에 필요한 팀워크도 기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잡채를 먹어보고 그 맛에 매료됐다는 쾨니히 대표는 “잡채의 면처럼 가늘고 긴 국수 종류가 한국에서는 ‘장수’의 의미가 있다는데 머크 역시 342년의 오랜 역사를 이어온 장수회사”라고 말했다.

“잡채는 다양한 야채가 들어가 영양도 풍부하고 맛도 뛰어나지요. 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색다른 요리가 될 수 있어 제 방식대로 몇 번 만들어 본적이 있습니다. 커리를 넣으면 동양적인 음식이 되고,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허브를 넣으면 프랑스식이 됩니다. 바스마티 쌀(길죽한 인도쌀)과 같은 재료를 넣어볼 수도 있지요.”

다양한 조리 방법으로 잡채를 만들면 세계인의 입맛에 어울리는 창의적인 요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신의 이름 ‘위르겐’이 한가운데에 수 놓인 앞치마를 집에서 직접 가져와 갈아입은 쾨니히 대표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손병훈 주방장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으로 잡채 만들기에 들어갔다. 능숙한 칼질로 당근·양파·피망 등 잡채에 필요한 각종 채소를 써는 모습에서 그의 요리 ‘내공’이 만만찮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채소를 볶고 당면을 삶을 물을 끓이면서 쾨니히 대표는 최근 한국인 친구 집에 초청받아 식사를 함께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날 친구의 부인이 8~10가지의 한식요리를 코스로 내놓았는데, 이름은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모두 참으로 맛이 좋았다는 것이다. “모든 음식이 조그만 개인용 접시에 담겨 나왔는데 마치 프랑스의 누벨퀴진(nouvelle cuisine· 시각을 중요시하는 현대식 프랑스 요리)을 떠오르게 했다”고 말했다. 쾨니히 대표는 “새삼 한국 요리가 세계인의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한식을 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선 현지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미국에서 파는 중국 요리를 보세요. 중국 사람 입맛이 아니라 미국 사람 입맛에 맞추고 있잖아요. 한식도 서로 다른 세계인의 입맛에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는 또 한식세계화를 한 번에 밀어붙이겠다는 성급한 마음보다 체계적인 계획에 따라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독일의 예를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야 이탈리아 식당이 생겼고 이어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 식당이 차례로 나타난 뒤 중국 식당이 등장했습니다.”

아직 한국의 이민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한식당이 세계 곳곳에 자리를 잡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면 된다는 것이 그의 충고다. 
글=이은주 중앙데일리 기자
사진=정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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