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누비는 광고트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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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 일본 거리에 50년 만에 다시 "광고 트럭"이 등장했다. 특수 제작한 초대형 병을 짐칸에 싣고 도심을 맴도는 트럭 밑부분에는 "붉은 우롱차 잎 100% 사용, 홍우롱차 신발매"라는 광고 문구가 적혀 있다.

요즘 들어 일본 도쿄의 도심에는 각양각색의 트럭 행렬이 부쩍 많아졌다. 그냥 화물트럭이 아니다. 뒤에는 큼지막한 각종 상품 모형을 실은 이른바 '광고 트럭'이다. 상품 모형은 대형 음료 캔에서부터 라면 봉투, 화장품, 건전지 등 갖가지다. 트럭뿐 아니다. 전면을 상품광고로 뒤덮은 '광고버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요즘 일본에선 TV 혹은 간판을 이용한 광고가 줄어드는 대신 이 같은 '움직이는 광고'가 각광을 받고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도쿄 도심의 시부야 사거리에는 요즘 15분에 한 번꼴로 길이 8.5m의 건강음료 '오로나민 C'의 병 모형을 실은 트럭이 오간다. 커다란 차체부터 일단 행인들의 눈길을 끌어들인다. 광고 트럭 이용 비용은 한달에 600만엔. 옥외간판 광고 비용의 4분의 1 수준이다.

일본 기업들이 '광고트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우선 도쿄의 고층빌딩이 이유였다. 도쿄 도심부는 최근 재개발 사업 등으로 고층빌딩이 빽빽해 간판을 쳐다보기가 힘들어졌다. 고개를 위로 제쳐야만 겨우 간판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이에 반해 트럭.버스 광고는 행인들의 시야에 쉽게 들어온다. 게다가 움직이는 사물을 눈으로 보는 인간의 습성 때문에 광고효과도 높다는 것이다. '오로나민 C' 제조업체인 오쓰카음료의 경우 도쿄에서 거의 모든 간판광고를 떼내는 대신 광고 트럭 쪽으로 광고비를 돌렸다. 시간에 따라 차별적인 광고를 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광고트럭은 아침시간에는 역 근처를 돌며 출근길 회사원을 목표로 삼고, 낮에는 백화점 앞에서 주부의 눈길을 끌어들인다.

이런 광고 트럭은 50년 전인 1950년대의 것을 되살린 것이다. 당시에는 전기전자업체인 산요, 위스키제조업체인 산토리, 제과업체인 가바야식품 등이 자주 이용했다. 이 '구시대 광고기법'이 50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데는 TV광고의 영향력 감소가 한몫했다. 인터넷.휴대전화 등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TV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다. 최근 평일 오후 8~10시 일본 방송국의 평균 시청률은 5년 전의 41%를 정점으로 올해는 37%대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0년 전 낮은 TV 보급률 때문에 세상에 나왔던 광고트럭이 TV를 안 보는 사람들이 늘면서 다시 도쿄 도심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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