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임신한 10대女에 보내는 산부인과 의사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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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치

일러스트=강일구

아줌마가 미안하다. 짧은 통화에 수화기를 들고 울먹이는 네게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구나. 산부인과 의사라지만 아줌마도 네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준비를 못했어. 이제 중 3이라니…참… 이런 심각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J의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편지를 써본다.

어떡하니? 엄마는 뭐라고 하시니? 아빠는? 네가 좋다던 그 남자친구는 어딜 가고 없어? 남자친구 부모님은 알고 있니?

미안해… 초등학교 5학년때 이건 그 이후건 첫 생리를 하게되면 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엄마가 될 수 있는 거란다. 남자친구가 좋지? 막 설레로 가슴이 뛰고 함께 있고 싶고… 그래 알아 성에 대한 호기심도 크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네 몸이 반응을 했던 것일수도 있어. 어쩌면 남자친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남자친구의 거칠고 강력한 순간적인 요구에 너의 신체 역시 부응한 것일지도 있지. 하지만 남자친구 역시 너와 아이를 부양하고 양육할 준비, 아빠가 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지? 너 역시 그러한 것처럼 말이야. 어쩌면 남자친구는 아마도 이 사실을 곧 잊을 지도 몰라. 널 다시는 안보려 할지도 모르고 피할 수도 있겠지. 의식적으로 외면할 수도 있고 나중에 청소년기의 무용담으로만 얘기 할 수도 있겠지. 물론 심한 경우이지만 말이야. 미리 기대하거나 상처받지 말라고 얘기해주는 거란다.

이럴 때는 정말 너 자신과 그리고 널 낳아준 엄마밖에 믿을 곳이 없을 지도 몰라. 아니 오직 너 자신과 네게 생을 준 신밖에 없을지도 몰라. 네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아직 준비가 덜 된 너 자신 외엔 불행히도 없어. 네가 설사 뱃속의 생명을 키워낼 용기가 있더라도 미성년 미혼모인 너와 그리고 너의 아이를 편견없이 훌륭히 잘 양육할 수 있는 준비가 이 사회도 아직 잘 안되어 있어. 그러니 또 상처받고 힘들더라도 견디어 내야 한단다.

J! 생리를 하는 네게 성관계의 의미와 네 몸의 특성, 피임법을 잘 알려주지 않은 어른들이 정말 잘 못한거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 네가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한 후 원치않은 임신을 하면 넌 인생의 다른 궤도를 도는 거야. 학교도, 남자친구도, 부모님도, 친구도 모두 다 멀어지고 오직 홀로 뱃속의 한 생명과 네 자신만 덩그라니 남는거야. 외롭고 무섭지?

남자친구가 좋아서 했던 한 번의 성관계, 넌 그 한번의 댓가로 한 생명의 엄마가 되어야 하는 거란다. 그리고 그건 네가 죽는 순간까지도 이어지는거야.

아니 넌 이미 한 생명의 엄마이고 이제 이 아이에게 네 몸의 살과 피를 나눠주어 키워내야하고 죽을때까지 이어지는 인연으로 돌보고 관여해야해.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이 아이에게 인생을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거야. 넌 이 마치 창조자인 신의 권한을 부여받은 것 같다. 네 자궁안의 한 생명에게 말이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아이 아빠가 될 어떤 사람과 가정을 이루는 것, 혹은 네 평생의 직업을 결정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무거운 중대한 인생의 문제이지. 한 생명의 인생에 대한 결정권자, 엄마가 된다는 건 말이야.

넌 현실이 무거워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로 수술대에 누울 수도 있겠다. 아직 어린 네 몸, 자궁의 휴유증도 문제이지만 네 마음의 그늘과 상처는 어떻게 하니. 사실 곰곰이 생각하니 아줌마는 네가 그런 선택을 하더라도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누가 뭐래도 네 몸, 네 인생의 미래에 대한 결정권자는 너 자신이니까.

네가 낳은 아이가 저출산을 해결하여 이 사회를 부강하게 하기에는 우리는 아직 준비가 부족해. 네 인생과 네가 낳은 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을 우리는 아직 감당하지 못해 내고 있어. 사회가 어른들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네 몸에 대한 성지식의 책임을 너 혼자 고스란히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 많은 에너지와 힘이 들거야.

그래도 네가 성숙한 모습으로 아이를 선택한다면 정말이지 응원해 주고 싶다. 아줌마도 세상에서 제일 보람되고 잘 했다고 두고 두고 생각되는 것이 엄마가 되는 거였으니까. 모두가 도와주어야 하고말고! 생명윤리? 앞으로 더 생각해보고 만들어 나가보자. 네 목소리가 가장 중요해! 이것 저것 고민 많고 두렵고 외롭기만 한 네 입장을 이해한다. 사랑한다. 기운내!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자

테레사여성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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