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우멍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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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멍거지는 자손 복이 적다' 는 속담이 있다.

우멍거지는 끝부분까지 포피로 덮여 있는 남성 성기, 즉 포경(包莖)의 순우리말이다. '우멍거지 ×자랑하듯 한다' 는 변변치 못한 것을 내놓고 뻐기는 사람을 비꼬는 속담이다.

한국에 포경수술이 도입된 것은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국 문화가 유입되면서부터였다. 특히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조상들이 포경 남성을 은연중 낮춰보는 속담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현대의학의 시각과 상관없이 '제 구실을 충분히 못하는' 상태로 여겨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이런 상태는 1백명 중 한명꼴에 불과하다고 많은 의사들이 주장한다. 언뜻 포경으로 보이더라도 대부분은 정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는 '과장 포피' 라는 것이다.

성경 창세기에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노예들이 포경수술(할례)을 받는 대목이 나온다. 6천여년 된 이집트 미라에서도 포경수술을 받은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꽤 오래된 관행임에 틀림없다.

신석기시대에 중동지방에서 시작됐다는 추측도 있다. 유대교.이슬람교 문화권에서 종교의식 혹은 통과의례로 치러지던 포경수술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영국과 미국에서 널리 성행했다. '자위행위를 줄이고 정력을 감퇴시킨다' 는 청교도적 믿음 탓이었다.

포경수술 대상은 남성만이 아니다. 유엔 등 국제기구는 아프리카와 중동을 중심으로 지금도 매년 2백만명 이상의 여성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고통스러운 할례(성기 일부 제거수술)에 희생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케냐.이집트.세네갈 등이 법으로 여성 할례를 금지했지만 근절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사면위원회는 재작년에 여성할례를 유엔난민지위협약상의 '박해' 로 규정하고 망명 사유로 인정하도록 촉구했다.

이미 스웨덴.미국이 이에 동조했고, 프랑스에서는 자국내 아프리카계 이주민의 할례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종교나 전통적인 배경이 없는데도 포경수술이 성행하고 있다. 여성 할례가 없어 그나마 천만다행이랄까. 갓 태어난 아기에 수술칼을 대는 일이나 수술받은 초등학생들이 불편하게 걷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무래도 애처롭다.

마침 '포경수술=성기학대' 라며 인권.의학적 관점에서 수술에 반대하던 국내 인사들이 국제포경수술정보기구(NOCIRC)로부터 인권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이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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