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남자들은 이런 걸 꼭 주고받아야 하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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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호 34면

박근혜 정치를 관통하는 코드는 신뢰다. 정치적 고비마다 일관성과 약속을 강조해 왔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그가 세종시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건 16대 국회(2002년) 때 한나라당 주도로 신행정수도특별법을 통과시킨 책임 때문이었다. 요즘 그가 정부의 세종시 신안에 반대하며 내세운 논리도 국민과의 약속이요, 일관성이다. 박 전 대표는 “원안이 배제된 안에 반대한다. 당론을 뒤집으면 따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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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행동을 놓고 정치권에선 “세종시 신안이 여론의 지지를 받기 전에 선제적으로 쐐기를 박은 것”이라거나 “충청권 표나 지지세력 결집을 노린 대권 계산법”이라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차기 구도에 대한 명확한 약속을 얻어내기 위한 제스처”란 분석도 있다.

왜 그럴까. 박 전 대표는 왜 그토록 약속이나 신뢰에 집착하는 것일까. 박 전 대표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살던 시절, 그를 보좌했던 한 측근은 그 원인을 배신의 기억에서 찾는다. 진한 배신을 경험한 사람이 갖는 생존적 본능이란 분석이다. 다음은 그가 전하는 일화 한 토막.

“10·26 후 청와대에서 물러나온 박 전 대표가 어느 날 시내 한 호텔의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어요. 엘리베이터 안에는 딱 두 사람뿐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장관을 비롯해 요직을 두루 거친 모 인사였답니다. 반가운 마음에 박 전 대표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어요. 단 둘뿐인 협소한 공간, 뜻밖에도 그 인사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끝내 외면하더랍니다. 그때 박 전 대표의 심정이 어땠겠어요.”

박 전 대표는 이런 심경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는 자서전에 “유신만이 살 길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때 무슨 힘이 있어 반대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하는 것을 보니 서글픔이 밀려왔다. …고마운 사람은 나에게 물 한 잔 더 준 사람이 아니라 시류에 오락가락하지 않으며 진실한 태도로 일관된 사람들이었다”(『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고 적었다.

박 전 대표에게 신뢰는 선, 배신은 악이다. 허물어뜨릴 수 없는 절대적 가치다. 정치인 이전에 인간 박근혜를 지탱해 주는 원천이기도 하다. 상황과 여건에 따라 말을 바꾸고 입장을 표변하는 정치권의 생리를 박 전 대표는 낯설어한다. 그를 주제로 한 주변의 정치공학적 분석과 예측이 번번이 빗나가는 것도 박근혜 정치의 신뢰 코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 탓이 크다. 신뢰를 앞세운 정치 스타일은 그를 비주류 정치인에서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정치인’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다만 ‘말 바꾸기=배신=악’으로 규정짓는 그에게 2002년의 경우는 예외로 기억된다. 당시 그는 총재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구조를 고쳐 당내 민주화와 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나라당을 탈당,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이회창 총재와 결별한 것이다. 그로부터 9개월 뒤, 대선을 한 달여 남겨놓고 박 전 대표는 자신이 부정했던 이회창 후보의 손을 다시 들어준다. 회군의 명분은 정권교체였다. “(여당인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이 재집권하는 걸 보고만 있을 거냐”는 설득에 맘을 바꿨다.

박 전 대표가 이 후보에게 회군하기 전, 양측은 물밑 교섭을 벌였다. 이 후보가 당선되면 박 전 대표에게 당권 혹은 총리직을 보장한다는 것 등 5개 항이 담긴 이면 합의각서다. 이 각서가 이 후보와 박 전 대표에게 각각 전해졌을 때 박 전 대표는 사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조건 없이 복귀했다. 당시 박 전 대표는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가기로 했으면 그걸로 됐지 이런 문건이 왜 필요합니까. 남자들은 이런 걸 꼭 주고받아야 하나요?”

박근혜의 신뢰 코드엔 아쉬움이 하나 있다. 추상적 원칙과 관념이 강렬한 나머지 현실감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다. 그의 신뢰 코드는 지지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수도 분할은 안 되겠다는 인식을 가진 많은 사람이 그런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태도 변화, 그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2002년의 정권교체처럼 신뢰를 뛰어넘는 더 큰 가치나 퇴로의 명분이 제시되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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