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꼬이는 경색 정국…접점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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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통령을 하면서 한번도 국회에서 자기 소신껏 입법을 하지 못해 안타깝다. 솔직한 얘기로 그것이 국정을 끌고 나가는 데 얼마나 힘을 빼고 있는지 이루 말할 수 없다. " (金大中 대통령, 3일 TV 3사와 대담)

"과거 경험에서 교훈을 얻는다. 수차례 영수회담을 했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후회와 분노.통탄뿐이다."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 8월 31일 기자회견)

접점(接點)없는 극한 대치의 정치현장. 경색정국의 막후엔 金대통령과 李총재 사이의 인간적 불신과 섭섭함이 깔려 있다.

"정국을 풀기 위해 두 사람간에 파인 감정의 골을 메워야 한다" 는 주장이 여야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金대통령이 李총재를 직접 거명하며 감정적인 표현을 쓴 적은 없다.

그러나 4일 청와대 관계자와 민주당 고위당직자들은 "이회창 총재가 역지사지(易地思之.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를 하지 않는 게 金대통령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 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입장을 바꿔 李총재가 대통령이 돼 북한 김정일(金正日)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한다고 할 때 야당 총재가 서울에서 TV도 보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고 다니면 李총재는 기분이 좋겠느냐" 고 주장했다.

남북관계 성과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할 건 비판하는 태도를 李총재가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 한 참모는 "李총재는 국가 최고지도자인 金대통령을 대통령으로서 대접하려 하지 않는다" 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심정은 李총재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李총재 측근은 "金대통령과 같이 대선을 치렀던 李총재가 청와대 앞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침묵시위(8월 30일)를 했으면 무슨 반응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말했다.

李총재는 '민주당 선거비 실사 개입 의혹' '한빛은행 불법 대출 사건' 에 대해 金대통령을 향해 여러 요구를 했다.

그러나 '수용할 수 없다' 는 金대통령의 간접적 반응을 놓고 국정 파트너십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쾌감을 갖고 있다는 것.

李총재는 최근 사석에서 "1960년대 박정희(朴正熙)대통령과 당시 김대중 의원의 갈등은 정책.이념 차이보다 인간적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 이라며 자신과 金대통령 사이에도 그같은 문제가 있음을 내비쳤다고 한다.

청와대측은 "金대통령이 소수정권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느냐" 며 李총재측의 '인간적 협조' 를 기대했다.

특히 "자민련에 교섭단체를 만들어 주는 것은 정치권의 기본 도리" 라는 점도 강조했다. 李총재측은 "(교섭단체와 관련한) '이회창-김종필 밀약설' 을 증폭시키고, '이회창 방북 추진설' 을 악용하는 金대통령과 주변 인사들부터 생각을 바꿔야 한다" 고 되받았다.

전영기.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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