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호텔 1만개…10년새 두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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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일 오후 8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대화역 주변 러브호텔촌.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8개의 러브호텔에 승용차와 팔짱을 낀 남녀가 수시로 들락거린다. '낯 뜨거운 장면' 을 목격한 주민들과 학생들은 당황한 듯 걸음을 재촉한다.

3일 오후 8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대화역 주변 러브호텔촌.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8개의 러브호텔에 승용차와 팔짱을 낀 남녀가 빈번하게 들락거린다. '낯 뜨거운 장면' 을 목격한 주민들과 학생들은 당황한 듯 걸음을 재촉한다.

기자가 러브호텔에 들어가 "하룻밤 자고 갈 수 있느냐" 고 묻자 종업원은 "잠시 쉬어가는 손님만 받는다" 고 말했다. 바로 옆 부지에는 신축 중인 러브호텔이 3개나 있었다.

러브호텔촌 바로 인근 아파트에 사는 金모(59.주부)씨는 "초등학교 1학년 손자가 조명이 현란한 유럽풍의 러브호텔을 놀이동산으로 착각하고 놀러가자고 졸라댈 때도 있다" 며 "아예 밤에는 외출을 삼가고 있다" 고 말했다.

주민 張모(41.주부)씨는 "5년 전 이사 올 당시만 해도 아파트 주변에 러브호텔이 들어설 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며 "집값이 내린 데다 팔려고 내놔도 매매가 안된다" 고 하소연했다.

1997년 7월부터 1만5천7백85가구가 입주한 인천시 계산지구에도 아파트 단지와 겨우 40m 정도 떨어진 곳에 러브호텔 18개가 영업 중이다.

주민 玄모(41.회사원)씨는 "7개 초.중.고교 학생들이 러브호텔 주변 도로를 통학로로 이용하고 있다" 며 "학생들이 러브호텔을 보고 무얼 배울까 걱정" 이라고 한탄했다.

경기도 성남시는 최근 분당신도시 백궁역 일대인 정자 2, 3지구(2만여평)에 9개의 러브호텔 허가를 무더기로 내줬다.

이곳엔 현재도 2개의 러브호텔이 성업 중이어서 조만간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 11개의 러브호텔이 들어서게 된다.

주민들은 "시가 지방세 수입을 늘리기 위해 주민들의 주거환경 보호는 안중에도 없이 건축허가를 내주고 있다" 고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전국 곳곳에 들어선 러브호텔은 모두 9천7백9개. 일반 B급 여관을 제외한 숫자다. 이렇다 보니 주민들이 벌이는 '러브호텔과의 전쟁' 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 책임을 안진다=신도시 등 대도시 주변의 러브호텔들은 교통이 편리하고 유흥업소가 밀집한 역세권을 중심으로 집단으로 들어서는 것이 특징이다.

일산신도시의 경우 지난해 12월부터 고양시 일대 준농림지에서는 러브호텔 신축이 금지됨에 따라 건축주들이 일산신도시 상업지역으로 방향을 트는 것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 러브호텔은 학교와 주택가가 근처에 있든 말든 법적으로 허용되는 상업지역 내에 마구잡이로 들어서고 있다.

지자체들은 "건축법과 도시설계지침 등에 따라 적법하게 신청되는 건축물의 허가를 근본적으로 막을 대책이 없다" 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 주민 반발=경기도 부천 중동신도시 포도마을 주민들은 시가 주택가 인근에 지상 8층과 10층짜리 러브호텔 건축허가를 내주자 지난달 21일부터 공사현장 앞에서 공사중단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러브호텔이 들어서면 자녀교육 및 집값 하락 등의 피해가 발생하는 만큼 공사중지 가처분신청 등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 고 주장했다.

일산신도시 대화동 러브호텔 주민대책위 목예균(睦禮均.58.여)위원장은 "러브호텔이 밀집하면서 인근에 안마시술소.나이트클럽.룸살롱.단란주점 등 향락업소가 덩달아 난립해 마을 전체가 환락의 도시로 변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D아파트 이승면(李承勉.41)입주자 대표회장은 "아파트 주변의 모든 러브호텔 영업을 중단시키고 시가 이들 시설을 매입해 도서관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양여성민우회 김인숙(金仁淑.46)대표는 "일산신도시의 도시설계 당시 아파트 단지와 왕복4차로에 불과한 거리를 둔 곳에 상업지역을 설치한 것 자체가 문제" 라고 지적했다.

반면 러브호텔 주인들은 사유재산권 침해라고 항변한다. 대화동의 한 러브호텔 주인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최근 아파트 쪽의 네온사인을 철거하고 차량 출입구를 분리했다" 며 "적법 절차에 따라 영업 중인 시설에 대해 주민들이 폐쇄를 요구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고 주장했다.

전익진.정영진.엄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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