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하나라도 도자기로 바꿔보세요 먹는 이 마음이 달라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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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도예가 이윤신(52·사진)씨는 팔뚝이 굵다. 물레질을 오래 해온 삶의 문신이다. 진열장 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도자기가 아니라 사람들 생활 속에 달그락거리는 그릇을 많이 만들겠다는 소명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홍익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일본 교토 시립예술대학원에서 도예를 공부할 때였어요. 실험적인 현대도예가 실용품이 아니라 예술품으로 치닫는 걸 보면서 오히려 우리 옛 막사발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입에 들어갈 소중한 음식을 더 맛있고 정갈하게 담아 내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윤신의 그릇’을 밥상에 올리면서 가족들의 칭송을 들은 단골손님들 추임새가 이런 그의 믿음을 굳게 해주었다.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내던 음식을 이씨의 도자기 그릇에 냈더니 식탁의 격이 훌륭해지더라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도자공예는 실용생활자기, 즉 그릇에서 출발했다”는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의 말도 큰 힘이 됐다. 정씨는 “그릇이라는 가치와 공예개념을 드높이기 위한 기치를 당당히 내걸고 우리 도자공예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작가가 바로 이윤신이다”라며 그의 생활도자운동을 평가했다.

흙 맛이 깃들어 있으면서도 손이 빚어낸 자유로운 변형이 은은한 이윤신씨의 그릇들. 이씨는 “한국음식은 한국그릇에 담아내야 제 맛이 우러난다”며 한식 세계화의 바탕이 그릇이라고 강조했다. [이도 제공]

“2006년 5월 그 동안 개인공방에서 내던 그릇을 더 널리 알리고 싶어 상호를 ‘이도(李陶, YIDO)’라 정했죠. 흙 맛이 깃들어있고 손맛이 은은해서 누구나 쉽게 만져보고, 써보고 싶고, 오래 사용해도 싫증이 안 나는 그릇이 이도의 꿈입니다.”

이런 이도의 꿈이 새해를 맞아 큼직한 마당을 얻었다. 29일 서울 가회동 북촌에 문을 여는 복합문화공간 ‘이윤신의 그릇-이도’다. 지하 3층, 지상 3층의 이 공간은 생활도예의 모든 것을 즐기고 느낄 수 있게 꾸며졌다. 이윤신씨의 그릇을 비롯해 국내외 도예가가 만든 생활도자와 조형도자작품을 전시·판매한다. 식탁문화와 관련된 생활예술품도 만날 수 있다. 전문 갤러리 2개가 들어서 1년 내내 전시가 열리며 일반인을 위한 아카데미도 개설된다.

“수공예의 높은 가치를 알리고 새로운 생활문화를 제안하는 곳입니다. 전시와 강좌, 이벤트 등을 통해서 아름답게 사는 법을 제안하려고요. 전통을 현대에 살린 혼례, 테이블 세팅, 푸드 스타일링, 다도 등 실습을 중심으로 한 ‘이도 아카데미’는 벌써 신청자가 수강인원을 넘어섰어요. 한국도예의 세계화를 위한 지원사업도 펼칠 겁니다. ‘그릇 운동’이 한식 세계화의 바탕이 돼야 한다는 본보기를 보여드릴게요.”

이윤신씨는 한식 세계화와 관련해 할 말이 꼭 있다고 했다. “음식과 그릇은 입과 혀의 관계와 같아요. 한국음식의 이야기와 역사를 느끼게 하려면 우리 그릇에 담아 내놔야 합니다. 요즘은 뭐든 빠르고 간편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한국음식은 이런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슬로 푸드’입니다. 그 정신을 같이 담아내야 한다는 거죠. 흔히 도자기를 다루기 어렵다고 지레 겁을 먹는데 한 번만 써보세요. 나중에는 다른 그릇 못쓰시게 될걸요.”

그는 “우선 밥그릇 하나만이라도 바꿔보시라”고 했다. 손끝에 저절로 정성이 담기고 조심하게 되며 손놀림에 여유까지 생긴다는 설명이다. “우리 그릇은 어느덧 사람의 마음까지 달라지게 한답니다.”

일반인이 직접 그릇을 빚고 구워볼 수 있는 ‘도예교실’도 초급·중급·핸드페인팅반으로 나눠 2월 1일부터 개강한다. www.yido.kr, 02-722-0756.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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