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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대물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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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흔히 가난한 아빠는 부자 아빠보다 지능지수(IQ)가 낮다고 한다. IQ도 대물림되는 걸까. 가난한 아빠네 아이들도 IQ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유전 탓일까 아니면 환경 탓일까. 유전 쪽으로 굳어지던 정설에 반기를 든 게 에릭 터크하이머(버지니아대·심리학) 교수다. 중산층 위주로 연구가 이뤄진 문제점을 꼬집었다. 빈곤층의 경우 열악한 환경이 IQ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못사는 집 아이가 잘사는 집에 입양되면 IQ가 12~18포인트씩 높아진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물론 IQ가 높아야만 잘되란 법은 없다. 노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봐도 그렇다.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가 되려면 최소 1만 시간, 주당 스무 시간씩 치면 10년은 연습을 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음악 신동’ 모차르트만 해도 진정한 걸작으로 평가받는 피아노 협주곡 9번을 쓴 건 작곡을 시작한 지 10년이 흐른 뒤였다. 7세 때 처음 링크에 선 김연아도 꼭 10년 후인 2006년 국제 시니어대회에서 첫 금메달을 따며 피겨 여왕에 등극했다. 그러나 아이 혼자 힘만으로 이만큼 노력하긴 힘들다. 모차르트 아버지나 김연아 어머니처럼 곁에서 끊임없이 도와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돈벌이나 집안일에 시간을 뺏겨서도 곤란하다. 한마디로 가난한 집에선 어렵단 얘기다.

빈곤층 자녀는 성공의 양대 조건이라 할 지능과 노력에서 불리한 조건을 타고난 셈이다. 가난한 아빠네 아이들이 훗날 가난해질 공산이 큰 게 놀랄 일이 아니다. 증여·상속 말고도 이처럼 교육에 대한 투자를 통해 세대 간에 부의 이전이 이뤄진다. 가정 형편과 상관없이 누구나 양질의 공교육을 받을 수 있는 북유럽 국가에서 부의 대물림이 세계 최저 수준인 건 그래서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우리나라가 북구보다도 부의 대물림이 적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유달리 높은 교육열로 전 계층에 걸쳐 고학력 자녀가 나왔고, 고속 경제성장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된 덕분이란다. 하지만 이번 조사 대상 자녀의 평균 연령이 30대 중반, 부모는 60대 후반이다. 사교육이 본격화된 이후 세대에선 부모의 소득 격차가 자녀의 교육 격차로 이어진 지 오래다. 교육이 대물림의 통로가 아니라 신분 상승의 사다리 노릇을 하게 하자면 공교육의 질 높이기가 급선무다.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는 교육에 달렸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