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질변경 오락가락…북한산 자락 흉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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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꿩이 날고 다람쥐가 놀던 서울 종로구 신영동 산 1-1외 6필지에 1997년 8월 암반을 깨는 굉음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서울 종로구청이 노인복지시설을 짓겠다는 민간업자에게 구기터널 부근인 이 일대에 형질변경 허가를 내주면서 풍치지구인 북한산 자락 3천평에서 아름드리 노송(老松) 수백그루가 뿌리채 뽑혀나가고 기암절벽도 무참히 파괴됐다.

이후 지난 1월 형질변경 허가를 내주었던 서울 종로구청은 "사업주가 공사 추진 능력이 없고 주민 안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며 형질변경 허가를 취소했다.

공사를 벌인지 3년이 지난 지난 30일에도 이곳은 산 능선이 가파르게 절단된채 누런 흙만 남은 민둥성이로 방치돼 인근 도로를 지나는 운전자들마저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흉물로 남았다.

◇ 형질변경 허가 오락가락〓인근 주민들은 "경사가 33도로 급하고 산림이 우거진 풍치지구에 형질변경 허가를 내준 것 자체가 무책임한 행정이었다" 면서 "당대의 정계 실력자가 압력을 행사해 구청측이 허가를 내주었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고 말했다.

구청측은 "풍치지구이긴 하나 건축이 가능한 전용주거지역인데다 서울시에서 '사업주의 재정계획이 합리적' 이라며 노인복지시설 내인가를 해준 상태라 마지못해 형질변경을 허가했다" 고 해명했다.

하지만 산림훼손 뒤 99년 7월부터 현장인부 한명 없이 공사현장이 방치되자 구청측은 올 1월 형질변경 허가를 취소했다.

지역 주민들은 "사업주가 공사비를 주지 않아 시공사가 수차례 바뀌고 임금을 못받은 근로자가 자살까지 하는 소동도 있었다" 고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구청측은 "사업주가 공사예치금을 구청에 맡기지 못하는 등 더 이상 사업을 추진할 능력이 없는 데다 산사태의 위험도 있어 안전 조치 차원에서 형질변경 허가를 취소했다" 고 밝혔다.

◇ 훼손 현장 장기간 방치 전망〓사업주는 이에 반발해 행정법원에 '취소 처분 효력정치 가처분 소송' 을 냈으나 지난달 기각됐다.

이에 따라 원고측이 제기한 '취소처분 무효' 본안소송이 확정될 때까지는 현장이 방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청측은 "사유지이기 때문에 예산을 들여 나무를 심는 등의 원상회복 조치가 어렵다" 고 말하고 있다.

더욱이 24억원대인 이땅에 40억원 상당의 가압류와 근저당이 설정돼 있어 토지 소유주가 바뀔 수 있다는 점도 원상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다.

주민 배덕현(72)씨는 "아름다운 북한산이 훼손되고 또 계속 방치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 이라며 "서울시나 종로구청이 이 땅을 매입해 소중한 산림을 되살리고 자연훼손에 대한 반성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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