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랑받는 의사·병원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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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개원의들의 전국적인 휴진이 강행됨에 따라 환자생명을 담보로 한 집단행동에 대해 국민적 비판이 거세다. 의사들은 이런 비판을 수용해 다시는 이런 방식의 의사표현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의사들에 대한 비판과 매도로 끝내기보다는 의료보험.의약분업 등 의료정책 전반을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먼저 사상 처음 벌어지는 의사들의 항의집회, 삭발.단식에 이어 전국적 휴진까지 불사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우선 의약분업 실거래가 제도시행의 첫 단계로 지난해 11월 15일 평균 약가가 30.7% 인하된 후 진료수가를 12.8%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의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총수입이 평균적으로 약 5% 감소됐다.

그러나 제도개혁 후 비용은 줄지 않았기 때문에 총수입에서 비용을 뺀 순수입은 엄청나게 감소했다. 특히 가장 타격이 심한 내과계 개원의들의 실제 월수입은 5백43만원에서 1백22만원으로 무려 4백21만원의 감소를 가져왔다.

하루아침에 똑같이 일하면서 78%의 수입감소를 성인군자라고 한들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정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전문가에게 일방적으로 고도의 직업윤리를 요구할 수 없다.

둘째, 의료보험과 관련된 규제들이 의사들의 전문적 판단과 진료행위를 제약하고 있다.

의료보험법과 보건복지부 고시에서는 보험급여의 범위를 규정하기 위해 역으로 급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모두 16가지의 비급여 대상이 정해져 있고, 이외에는 의료기관 임의로 비급여 대상으로 적용해서는 안되게 돼있다.

결국 의료보험 재정을 보호하기 위해 의료보험과 관련되지 않은 모든 의료행위를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의료기술이 환자에게 적용돼야 하고 만일 이런 기술들을 적용하지 않아 진료결과가 나빠진 환자가 의료과오 소송을 제기했을 경우 의료보험법을 지킨 의사는 엄청난 보상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셋째, 보험자에 의한 일방적 심사가 의사들의 전문성과 자존심에 손상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의료보험에서는 혈소판 수치가 5만 이하의 경우나 현재 출혈이 있을 경우에만 혈소판 수혈을 인정한다.

그러나 임상의사들은 10만(정상치는 14만~40만) 이하면서 출혈 가능성이 있을 경우 예방목적으로 혈소판 수혈을 처방한다.

이 경우 수혈제제로 이익도 크지 않고 수혈의 부작용 때문에 과잉처방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여지없이 과잉진료라는 불명예와 함께 진료비는 환수조치하게 된다. 이러한 규제의 숲속에서 의사들은 교과서에 있는대로 진료하고 싶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넷째, 국민들은 좋은 시설에서 안락한 서비스를 원하고 있고 언론기관마다 경쟁적으로 서비스 평가를 통해 순위를 발표한다.

소위 재벌들의 사회환원이란 명목으로 막대한 자본투자를 하는 병원들과 경쟁하기 위해 기존 병원들은 출혈을 감수해가며 시설과 장비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7월 1일로 예정된 의약분업은 의사의 적정수입도, 투자여력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것이다.

의사도, 병원도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고 사랑받고 싶다. 오늘을 사는 의사들도 '허준' 이 되기를 원한다. 정부가 만들어준 시설과 장비로 한 환자를 30분씩 진료할 수 있는 여유를 즐기면서 전문가로서의 적정대우를 받기를 의사들도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바로 의사들이 원하는 의권(醫權)회복인 것이다.

그러나 의사나 병원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자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장 좋은 서비스를 원하는 시간에, 합리적 비용으로 제공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환자의 생명이나 국민불편을 담보로 해서는 안된다.

인내심을 갖고 정부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경영과 경영자료의 공개가 전제돼야 한다. 시범사업도 철저한 준비를 거쳐 문제점을 찾아 대안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어야지 분풀이가 돼서는 안된다.

정부나 시민단체들도 개혁입법이라는 명분만으로 현재의 분업안 내용과 절차를 고집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개혁은 현 제도의 파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생명력을 창조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의약분업이란 제도개혁은 시도하면서 왜 수가개혁은 할 수 없는가?

김한중<연세대 보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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