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中 한인사회] 下. 돈 있다고 행동 우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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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국동포인 베이징(北京)의 한 유명 대학의 K교수는 한국 손님만 찾아오면 불안해진다. 별 사고없이 지나치는 경우가 드문 탓이다.

지난해 11월 호텔 우의빈관(友誼賓館)을 빌려 치른 한.중 세미나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자리가 끝난 뒤 한국인 둘이 고급 중국술인 우량애(五粮液) 두병을 옷 속에 숨겨 나가려다 종업원들에게 적발된 것이다. 술에 취한 탓을 해가며 술값을 내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했지만 K교수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1998년 9월 시안(西安)의 한 운수업체 기술고문으로 파견나와 있던 李모(58)씨는 취중의 실수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오후 9시30분쯤 2차를 한다며 하이싱(海星)가라오케에 들른 게 화근이었다.

문앞에서 안내하던 여종업원 장리(張麗)가 귀엽다며 손으로 둔부를 쳤다. 정식 사과를 요구한 張은 중국 신문기자까지 불렀다. 결국 명예손상비 3천위안을 주고 중국 언론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 몇번이고 머리숙여 사과를 표시했다.

뿐만 아니다. 시안의 화상보(華商報)에 서면사과를 게재한 뒤에야 간신히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중국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그해 10월 허베이(河北)성 고급인민법원은 다롄(大連)과 지린(吉林) 등을 돌며 14차례에 걸쳐 마약 11.2㎏을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김진명(金珍明.60)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한달 뒤엔 고구려 고분이 밀집돼 있는 지린성 지안(集安)시에서 한국인 배용문(46)씨가 도굴 혐의로 체포됐다. 裵씨는 중국동포를 고용해 고구려 고분 도굴에 나섰다가 붙들린 것이다.

서울 차이나타운 개발위원회 회장인 양필승(梁必承)건국대 교수는 "우리와 비슷한 문화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중국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경계심' 마저 허물어버린다" 며 "필요할 때는 대우해주다가 문제가 생기면 '한국사람이냐 중국사람이냐' 고 중국동포를 몰아붙이는 것도 문제" 라고 말했다.

중국을 찾는 한국인 수가 급증하면서 각종 사건의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로 나서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다. 중국보다 소득이 좀 높다는 우쭐함이 천민자본주의 행태로 나타나고 범죄자들까지 중국으로 몰려든다.

최근 광주지법 법정에서 탈주한 장현범(張鉉範)씨가 중국 밀항을 계획했다고 밝혔듯이 중국은 한국 범죄인들의 도피처로도 이용되고 있다. 가까운 데다 물가가 싸 적은 돈으로 생활이 가능하고 중국동포의 도움으로 손쉽게 언어문제가 해결되며 워낙 땅덩이가 커 체포 염려도 없다고 계산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잇따른 사건사고로 얼룩진 중국 한인사회는 또 두개의 한인회로 갈려 있다. 98년 손근호(孫根浩)씨를 회장으로 한 한인회에 이어 지난해 신영수(愼榮樹)씨를 주축으로 한 또다른 한인회가 탄생했다.

몇차례의 단일화 협상을 가졌으나 지난해 12월 18일과 20일 각각 총회를 열었다. 중국당국은 아직 한인 교민 조직을 정식으로 허가하지 않고 있다. 중국 민정부(民政部)가 3월께 법안을 정비, 두 한인회 중 하나에 인가를 내줄 예정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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