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세상보기] 이창동에-우리의 프라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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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본다 본다 하면서 오늘에야 '박하사탕' 을 봤다.

피카디리 극장 조조 프로를 보고 나와 지하철에서 내린 다음 학교까지 한참을 혼자서 걸었다.

한때 저탄장이었던 지하철 일대의 거무티티한 풍경에 때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발에 깡통이라도 걸리면 툭 차고 싶게 나는 왠지 가슴이 '박하' 처럼 화해지면서 그렇게 쓸쓸하게 걸었다.

찡한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여진(餘震) 때문에 어찌할 바 몰라 한참을 걸어줘야 하는 것이 내 버릇이긴 하지만 1970년대식으로 내리는 이문동 눈발 속에서 나는 비로소 그와 결별했다.

이창동은 이제 내 친구가 아니다.

문단의 비좁은 골목길에서 실없이 이죽거리고 낄낄대고 때론 서로 힘겹게 비벼대던 글벗이었던 이창동은 이제 나와의 그런 사사로운 인연에서 완전히 떠난, 낯선, 또 하나의 경이로운 이름이 됐기 때문이다.

나는 감히 말하건대 이창동의 '박하사탕' 에 와서 한국영화의 숙원사업이 마침내 성취됐다고 본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박하사탕' 의 이창동은 한국영화를 단숨에 세계성의 고지로 끌고 올라갔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한국영화사는 이창동을 기다렸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박하사탕' 의 미학적 승리는 우선 시간을 역류하는 영화적 내러티브의 새로움에 있다 하겠다.

삶이란 게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가 직선적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속에 갇혀 있는데, 이창동은 영화에서 바로 이 운명에 도전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그 어떤 영화도 시도한 적이 없는 시간에 대한 도전을 그가 설득력 있게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거꾸로 가는 영화' 라니! 이 영화는 시간을 역류하는 7개의 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장이 거듭될수록 관객은 '원인을 결과하는' 교묘한 역(逆)인과성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 감독이 궁극적으로 의도하고 있는 것도 그것이다.

삶을 되물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 말이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이건 삶이 아냐, 이렇게 사는 게 아냐" 하면서 진저리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창동은 특유의 검은 농담과 통렬한 반어법으로 '리와인드' 시키고 있다 하겠다.

그래서 주인공이 권총을 머리에 대고 "내 인생을 망가뜨린 놈 한 놈은 죽이고 죽고 싶은데 그런 놈들이 너무 많아 어떤 놈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 고 절규할 때 가슴이 저렸다.

'박하사탕' 은 이 땅에 너무 많은 '아름다운 폐인' 에 바쳐진 광시곡인지도 모른다.

특히 설경구는 김영호로 대변되는 이 땅의 많은, 선의(善意)속에 깃들인 광기를 신내린 듯 탁월하게 끄집어 냈다.

이른바 '착한 꼴통' , 이는 이창동이 애호하는 인물형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감독이 배우들을 작품 속에 완전히 장악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 도처에 기차가 지나간다.

기찻길 이미지는 장과 장 사이를 구분짓고 전환시키는 시그널 역할을 하지만 무엇보다 각 장을 한 줄로 꿰어 이 영화 전체를 하나의 자족적인 구조로서 지탱시키고 있다.

감독이 기차에 시간이라는 영화적 은유를 싣고 있다는 것은 금세 알 수 있다.

또한 주인공이 쫓고 쫓기면서 삶의 어떤 경계를 넘을 때마다 그 곁으로 기차가 맹렬하게 지나갔다.

다만 광주 진압에 투입된 영호가 오발로 처녀를 죽인 장면에서만 기차가 멈춰 있다.

'박하사탕' 은 한마디로 우리 삶을 관통하고 있는 시간의 정체에 대해 묻고 있다.

"우리의 생을 파먹는 시간이라는 게 원수!" 라고 절규한 것은 보들레르였던가□ 타르코프스키 이후로 나는 한동안 볼 영화가 없어져버렸다. 한참만에 키아로스타미가 내 인색하고 빈약한 망막을 통과했다. 그리고 내 눈은 오늘 '박하사탕' 을 먹었다.

세계영화사의 목록에 이창동이라는 이름이 등재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한다.

한때의 골목길 친구로서 이 얼마나 약오르고 신나는 일이냐.

황지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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