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설전 예산안 표류…예산 배정싸고 원색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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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밀레니엄 첫해 예산을 다루는 국회 예결위의 2일 오후 10시30분 회의장 밖 복도. 국민회의 박광태(朴光泰).임복진(林福鎭)의원과 한나라당 이강두(李康斗)의원 사이에 고함과 삿대질이 오가는 장면이 목격됐다.

국회 사무처 고위 관계자는 "말 다했어" "이× 뭐야" "이 ××" 라는 험악한 소리에 움찔, 걸음을 멈췄다.

朴의원이 "우리와 무슨 원수졌어" 라고 소리치자 "집권하니 눈에 보이는 게 없어" 라는 李의원의 맞고함이 터졌다.

연 사흘째 전주 신공항 건설과 광주 광(光)산업 지원을 '지역편중' 으로 지적한 李의원(거창-합천)을 林의원(광주 남구)이 회의장 밖으로 불러내며 시작된 소동이다. 예결위는 중단됐고 거칠게 표류했다.

한나라당은 "朴.林의원이 입에 못담을 욕을 했다" 면서 예결위 퇴출을 요구했다. 국민회의는 "욕을 한 것은 한나라당" 이라고 일축했다.

예결위는 3일에도 열리지 못했다. 이 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예산을 한푼이라도 더 따내려는 과열.혼탁 경쟁엔 여야가 따로 없다.

때문에 92조9천억원 규모의 새해 예산이 지역구 득표를 겨냥한 선심성 예산으로 얼룩질 위기를 맞고 있다.

◇ 지역구 챙기기〓사업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여러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소싸움장 건설비용 예산유치 경쟁은 대표적 사례. 한나라당 김재천(金在千)의원은 "권위있는 전국 소싸움인 진주 소싸움장에도 예산이 지원되도록 해달라" 고 요청했다.

그러자 청도 출신의 자민련 김종학(金鍾學)의원이 즉각 "청도 소싸움이 제일 유명하니 장관은 염려말고 지원해 달라" 고 반박했다.

지역구(서울 은평을)에 북한산 등산로가 있는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의원은 "우리 동네 뒷산에서 북한산에 가는 사람에게 입장료를 면제해 달라" 고 주문했다.

이미 당정협의 과정에서 지역 숙원사업을 반영한 여당보다 예산 편성에서 소외된 야당 의원들의 요구가 비교적 많은 편.

한편 한나라당 권오을(權五乙)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10월 안동 방문 당시 유교문화권 개발에 2조4천억원 투입을 약속했는데 1백65억원밖에 지원되지 않고 있다" 고 볼멘 소리를 했다.

여당도 지역 예산의 '+α' 를 따내려는 몸부림은 마찬가지. 부산 출신 김운환(金□桓.국민회의)의원은 "청도 댐에 있는 물은 흐르는 쪽인 부산으로 내려와야 한다" 며 부산의 식수원 해결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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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김성곤(金星坤)의원은 지도판까지 들고나와 여수~순천간 국도 우회도로 건설비 17억원 지원을 요구했다.

◇ 지역편중 예산 공방〓지역 예산 확보 경쟁은 '남의 지역구' 예산 삭감 시도로 이어져 '편파 배정' 시비를 증폭시키고 있다.

전주 신공항 건설은 야당이 이의를 제기하는 단골 메뉴. 김형오(金炯旿)의원은 "전주~군산 고속화도로가 내년에 완공되면 군산공항까지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며 중복투자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민회의측은 "30년 동안 특정지역 정권 아래서 호남은 낙후돼 왔다" (박광태의원)며 '불균형 시정론' 을 내세워 맞서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전철화하게 돼있는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간을 고속철로 해야 한다며 영남권 투자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선거를 앞둔 나눠먹기식 예산 편성은 국민 대표 자격을 상실한 것" (고계현 경실련 입법국장)이라며 본격감시에 나설 태세다.

최훈.이상렬.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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