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역질서'시대] 3. 일본과 유럽의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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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두고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시장에 진출할 기회가 대폭 넓어질 것이란 예상에서다. 그러나 주력 수출품이 중국과 겹치는 동남아 국가들의 경우 벌써부터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 일본〓관세인하.투자규제완화 등의 분야에서 미.중 합의가 기존의 일.중 합의보다 한단계 진전돼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은 잔뜩 기대하고 있다.

예컨대 자동차 관세의 경우 일본은 중국과 협상을 벌여 50%로 낮춰 놓았지만, 이번 미.중 협상에서는 중국의 양보로 단번에 25%로 낮아졌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똑같이 적용되므로 도요타.혼다 등 일본 자동차업계에는 큰 호재다.

물론 미국.유럽의 자동차회사들과 한판 경쟁을 벌여야 하지만, 같은 아시아권으로 중국인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과 성능을 무기로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통신.인터넷 분야의 빗장이 열린 것도 일본의 통신업체에는 희소식이다. 상하이(上海).베이징(北京)에 합작회사를 차려 통신망 사업을 벌이고 있는 NTT는 중국을 최대 전략시장으로 간주해 사업을 적극 확대할 계획이다.

은행들도 중국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위안화 업무가 개방되는 데다 WTO 가입 2년 뒤에는 기업금융이, 5년 후에는 소매금융까지 외국은행에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상하이나 선전을 중심으로 영업 중인 일본계 은행들은 일본 기업이 많은 다롄(大連)등으로도 지점망을 넓힐 것을 검토 중이다.

일본 기업들은 중국의 투자규정이나 룰이 투명해지는 데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과 거래 중인 일본 기업의 가장 큰 불만은 법.제도의 불투명한 운영이었다.

통산성측은 "예고없는 제도변화나 외국기업에 대한 차별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여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 기업에는 좋은 기회가 될 것" 이라고 밝혔다.

◇ 유럽〓중국과의 WTO 가입협상을 남겨두고 있는 EU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중국 시장을 미국에만 넘겨줄 수 없다는 각오다. EU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통신기술과 금융부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세계적 기술자문회사인 가트너 그룹의 부사장 피터 선거가드는 "중국 시장 개방으로 휴대전화 관련 분야가 가장 큰 이익을 낼 것" 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중국 내에서 10%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핀란드의 노키아, 스웨덴의 에릭슨 등은 기득권을 살려 모토로라 등 미 기업들의 추격을 따돌리겠다는 전략이다.

유럽 무선전화협회도 "현지 기업 및 다른 선진국 기업의 가세로 경쟁이 치열해지겠지만 수요가 절대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만큼 유럽의 강세가 이어질 것" 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지멘스.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반도체 칩 제조업체도 마찬가지.

중국 경차시장에서 연간 58만6천대를 판매하며 시장점유율 50%를 차지하고 있는 폴크스바겐, 외국인들의 중국 방문 급증으로 막대한 수입이 예상되는 호텔체인 등도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 등 금융분야에서는 중국 정부가 얼마나 개혁의지를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부실채권 규모가 2천억달러에 이르는 중국 4대 은행의 문호를 외국인에게 개방하지 않을 경우 경영이 정상화되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 동남아시아〓나라마다 입장이 다르다. 홍콩.대만 기업들은 중국 투자를 더욱 활발히 추진할 것이지만 태국.인도네시아 등 주력업종이 중국과 겹치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국가들은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맞게 됐다.

일본무역진흥회(JETRO)의 우사미 요시아키(宇佐美喜昭)중국.북아시아팀장은 "당장은 중국의 경쟁력이 다소 처지지만 몇년 후에는 동남아 국가들이 쫓기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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