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 북·미관계 낙관론의 두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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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의 대북정책에 관여하는 클린턴 행정부 관리들은 지금 가벼운 긴장 속에 평양손님을 기다린다. 평양신사의 이름이 강석주(姜錫柱)인 것과 그의 도착이 임박한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페리가 건의한 대북정책의 성패가 이 고위급 회담에 달렸기 때문에 국무부 주변의 설렘도 이해가 간다.

한국의 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司空壹)과 미국의 국제경제연구소(소장 프렛 버그스텐) 공동주관으로 이곳 세인트 레지스 호텔에서 18~19일 이틀 동안 열리는 한.미 21세기위원회 회의에서 미국측 고위관리가 설명한 북.미협상의 현 주소는 대강 다음과 같다.

북한과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연기에 협조하는 시점에 있다. 미국은 북한에 긴장완화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고, 북한은 미국에 북한에 대한 적대적 자세 해제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경제제재의 해제와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는 핵과 미사일문제가 흥정의 초점이다.북한은 일단 미사일 시험발사 연기를 선언했기 때문에 협상의 다음 단계에 어느 정도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다.

미국측 고위관리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적인 혜택이 북.미회담이 거둔 작은 진전의 배경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그는 북한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포용정책에 호응할 조짐을 보여 남북관계의 진전이 현대의 경제적 진출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한국 참석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페리 보고서와 북한의 미사일 시험 모라토리엄에 바탕을 둔 워싱턴의 조심스러운 낙관론에는 두개의 함정이 있다.

하나는 페리 보고서가 거의 전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측 참석자가 지적한 대로 적어도 공개된 페리 보고서에는 햇볕정책에 관한 언급은 단 한 마디도 없다.

미국이 생각하는 북.미협상의 당면 목표는 94년 제네바 핵합의체제를 유지하면서 북한 미사일의 개발.시험발사.수출을 저지하는 것이다.

미사일 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을 사정거리에 두는 노동과 대포동1호보다는 미국의 일부를 겨냥하는 대포동2호에 전적으로 관심이 있어 보인다.

두번째 문제는 북.미협상의 타결이 선거를 앞둔 정치의 계절과 일치해 이 나라의 대북정책이 당파적 논쟁에 휘말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2일 상원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에서 페리를 증인으로 불러놓고 열었던 청문회나 다음날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청문회는 모두 진지한 토론보다는 페리를 앉혀놓고 주로 공화당 의원들이 클린턴의 대북정책 '실패' 를 성토하는 무대로 변해버렸다.

한.미 21세기위원회 회의에서도 어떤 미국인은 북.미협상의 실패를 이렇게 진단했다:(1)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의 양면성을 보지 못한다. 북한은 악(evil)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나라다.(2)94년 핵합의가 파산한 북한경제의 생명을 연장했지만 북한경제가 회생하지 못하면 그것도 허사다.(3)북한의 도발행위에 번번이 양보와 타협으로 대응해 아이로니컬하게도 북한은 미국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가 됐다.(4)북.미 타협이 북한에서 지각변동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보다는 낫다는 전제는 틀렸다.(5)94년 핵합의때 합의 아니면 선제공격이라는 이분법적 대응은 틀렸다.

무력시위 같은 대안이 있었다.(6)협상이 실패하면 북한위협의 견제로 돌아간다는 2중노선(two track)대응은 실천이 어렵다.

이르면 이달 안에 열릴 북.미 고위급회담은 94년 이래의 큰 분수령이 된다. 여기서 진전이 없으면 2001년 새 정부 출범 때까지 북.미협상은 긴 동면(冬眠)에 들어간다. 공화당이 집권하면 대북정책은 또한번 전면 재검토의 운명을 맞는다.

정치계절에 진행되는 북.미회담에서 미국은 한국의 햇볕정책을 배려할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한국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면서 미국과 공조해야 한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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