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초점] 국정원 감청시설 공개거부에 野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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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가정보원이 보유.운영 중인 감청(監聽)시설에 대한 공개 문제로 15일 국가정보원에 대한 정보위 감사는 초반부터 파행을 겪었다.

국정원과 여당이 '감청시설 공개 불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반발, 감사를 거부한 채 전원 철수한 것.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본관에서 열린 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도.감청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높은 만큼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감청설비를 보여달라" (金道彦의원), "국내.국제전화에 대한 감청이 국정원 제8국(과학보안국)내 운영 6, 7과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며 설비 공개를 촉구했다.

그러나 천용택(千容宅)국정원장은 "외국의 정보기관 중에서 정보시설을 보여주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고 맞섰다. 千원장은 또 "우리가 불법 감청을 했느냐 여부가 중요한 것이지 시설과 장비를 본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느냐" 며 "원장직을 걸고 맹세하는데 불법 도청은 한 건도 없다" 고 '불가' 입장을 거듭 강조.

여당 의원들도 千원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국민회의 임복진(林福鎭).박상천(朴相千), 자민련 이긍규(李肯珪)의원 등은 "국정원에서 보안상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면 못하는 것 아니냐" 고 가세했다.

김인영(金仁泳.국민회의)정보위원장도 "야당 의원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피감기관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다" 며 버텼다.

그러자 한나라당 간사인 김도언 의원은 "국정원이 (설비를)절대 보여줄 수 없다고 하는데 더이상 감사를 하는 의미가 없다" 며 보이콧을 선언. 박관용(朴寬用)의원 등은 "정부기관이 도.감청 장비를 아무런 규제와 통제없이 마구잡이로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 면서 "최근엔 무허가 업자로부터 장비를 구입한 사실까지 드러나지 않았느냐" 고 비난했다.

이어 이부영.박관용 의원이 감사장을 박차고 나갔으며 회의는 오후 1시40분쯤 정회. 김도언.정창화(鄭昌和)의원도 각각 기념식수를 끝낸 후 철수, 오후감사는 여당만의 '반쪽 감사' 로 치러졌다.

한편 千원장은 감사에 앞서 오전 기자실에 들러 "필요한 경우 전화국을 활용해 합법적 감청만 하고 있다" 며 별도의 감청 설비가 없음을 주장했으나, 정작 감사에선 이부영 의원이 제시한 '과학보안국' 의 존재를 인정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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