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통하는 일본] "가슴으로 울고 웃게 한 겨울연가는 인생 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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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결혼을 2주일 앞두고 약혼녀를 사고로 잃었습니다. 이후 저에겐 사랑이란 없었습니다. 그러나 '후유노 소나타'('겨울연가'의 일본명)는 나에게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줬습니다. 가슴으로 울고, 가슴으로 느끼게 한 이 드라마는 제 인생의 은인입니다."(47세 남성)

비가 내린 28일 밤 도쿄 시부야의 NHK홀은 눈물바다였다. 3개 층을 가득 메운 3000명의 청중은 물론이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자도 연방 눈가를 훔쳤다. 지난 21일로 막을 내린 드라마 '겨울연가'의 감동을 되새기려고 NHK가 마련한 일종의 팬 사은행사였다.

"방송이 끝나자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듯하다. 허전함을 달래 달라"는 팬들의 성화 때문이었다. 일본 방송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게 NHK의 설명이다.

전국에서 16만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려 5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날 행사에 참석한 '겨울연가 팬'들은 30~60대 여성이 압도적이었다. 겨울연가의 명장면이 다시 나올 때마다 손바닥이 얼얼해질 만큼 박수를 보냈다.

윤석호 제작감독과 김은희.윤은경 작가에게는 "겨울연가 속편을 만들어 준상(배용준 역)의 시력이 돌아오게 해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이어 "세월이 흘러도 첫사랑의 기억은 변하지 않는 법. 진정한 '나'를 되찾아 준 '겨울연가'에 건배!"(77세 여성), "같은 드라마를 보고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두 나라 국민이야말로 '한가족'이 될 수 있다고 느끼고 있다"(60세 여성) 등 팬들의 편지가 소개됐다.

"요즘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한국어를 공부합니다. 겨울연가는 몸이 불편한 남편과의 사랑이 힘들 때마다 내게 사랑의 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줬고, 힘과 희망을 줬습니다. 건강해진 남편과 겨울연가에 나온 남이섬의 전나무 숲길을 꼭 걷고 싶습니다." 도쿄에서 차로 여덟시간 거리의 아키타(秋田)현에서 왔다는 고다마(兒玉.45)란 여성의 '겨울연가 후기'가 낭독되자 팬들의 눈시울은 다시 붉어졌다.

배용준.최지우로부터의 영상 메시지가 끝나고도 대다수 관객은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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