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75.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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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제10장 대박

공교롭게도 뱀으로 연유된 웃지 못할 사건은 그로써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뒤로 몇몇 수사관들의 출입이 뻔질나기 시작했던 것도 사건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가게 주변의 변화였다.

그러나 도매상은 그 기회를 기회로 삼는 재치를 보였다. 찾아와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위협하고 드는 그들에게 근력 부추기기라고 뱀탕을 제공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물론 돈은 받았지만 받는 척만 하였다. 삼사일 터울을 두고 몇 사람이 보완수사를 핑계하고 다녀갔다. 올 때마다 뱀사건을 들먹였고, 들먹일 때마다 뱀탕을 제공했다.

그런데 뇌물로 작용해준 그 뱀들은 8할이 그들이 찾고 있었던 밀수입 뱀이란 사실이었다. 일반인들은 상식과 눈썰미가 있다 해도 식별할 수 없었지만, 약초장사로 잔뼈가 굵었다는 도매상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동기간처럼 트고 지내는 땅꾼 몇 사람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 비밀이 탄로날 리 없었다.

한통속인 땅꾼들도 힘들이지 않고 뱀을 잡아 수입이 짭짤했으므로 구태여 제 살 도려내는 꼴인 고자질을 할 까닭이 없었다. 땅꾼 한 사람은 아예 도매상 자택이 있는 뒷산 골짜기에 움막을 치고 상주하다시피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독사.능구렁이와 영험하다는 소문이 파다한 백사 (白蛇) 를 포획하는 횡재를 거둘 수도 있었다. 백사는 잡았다 하면 수백만원을 호가해서 이른바 대박이 터지는 상품이었다. 한 마리를 잡고 땅꾼 생활을 청산한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때, 도매상이 증거인멸을 겨냥하고 풀어준 수백마리의 뱀은 제출물로 강원도 태백산 기슭의 청정 이슬을 마시고 오염되지 않은 두꺼비를 잡아먹고 자란 뱀으로 둔갑하여 도매상에게 괄시못할 잇속을 제공하고 있었다.

엉겁결에 저지른 범죄행위가 오히려 잇속으로 되돌아온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기에 한철규도 울고 싶도록 웃었다. 그러고 보면, 그 가게에 쌓여있는 대부분의 중국산 약초들도 국산으로 둔갑해 전국 각지로 팔려나갈 게 틀림 없었다.

속이고 속이는 범법행위가 산골에 있는 약초가게에서도 아무런 경계심이나 수치심 없이 저질러지고 있었다.

"고발할까 봐서 입 다물고 있었습니다만, 박씨라는 사람 안심시키려고 고백한 것이란 점을 명심하십시오. 내가 덜컥 걸려들면 박씨도 온전할 리 없지 않겠습니까. "

"경찰이 형씨를 주목하고 있을 것도 명심해야지요. 한눈 팔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가게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을 거예요. 앞으로 처신을 주의한다면 그 사건은 유야무야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다시 밀거래를 하다가 걸려들었다 하면 그땐 돌이킬 수 없겠지요. 임기응변도 막다른 골목에 이를 때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겠지요. "

"아니래도 뒤통수가 간질간질해서 땅꾼들을 철수시킬까 생각 중입니다. " "간질간질한 뒤통수에 날벼락 떨어지기 전에 철수시키는 게 옳을 것 같소. " 주문진에 당도한 것이 밤 10시였다. 안면도의 희숙이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을 확인한 뒤 곧장 고흥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방극섭이가 받았는데 상당히 고조된 목소리였다.

"한선생 여태까지 거그서 뭣하고 있당가? 한선생 주문진으로 내빼불고 없는 동안 여그선 꽃게장사로 찮은 이문을 봤어라. 꽃게어장 땜시 남북 해군함정들이 대가리 터지게 싸우는 동안 우리는 꽃게장사로 이문 챙겼으니 쪼까 체면이 쑥스럽게 되았뿌렀제이. 그라도 중국 거쳐서 들여오는 북한산 꽃게 땜시 남한의 꽃게값 폭등하는 것을 막아준다니 이런 지저분한 낭패가 없게 됐뿌렀제이? 남북이 사이좋도록 사는 게 우리 같은 서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수월치는 아잉가 보제. 그건 그렇고 핑허니 댕겨온다던 사람이 싸게 안내려오고 뭣하고 있어라? 변선생이 내려와서 이것저것 간섭하는 것은 괜찮은 일이지만, 한선생 떠난 후로 멀쩡하던 승희씨 입에서 자주 아프다는 군소리가 나와서 나가 덩달아 심기가 편치 않당게. 소양없는 헤찰말고 싸게 내려 왔뿌러. 얼굴 잊었뿔까 겁나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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