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용가리'의 분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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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주 유엔개발계획 (UNDP) 이 발표한 99년판 '인간개발보고서' 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최대 수출산업은 항공기.컴퓨터.자동차 그 어느 것도 아닌 영화.TV 프로그램 등 오락산업이다.

이 보고서는 문화의 글로벌화 (化)가 급속히 진행함에 따라 세계 오락산업에서 미국의 일극지배 (一極支配) 구조가 심화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80년 미국 영화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전체 수입의 3할이었으나 지금은 5할을 넘는다.

미국 영화의 해외 시장점유율은 유럽 7할, 중남미 8할, 일본 5할에 달한다.

반면 외국 영화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3% 미만이다.

이같은 문화적 편중현상은 각국의 예술적 다양성을 훼손하고, 국가의식 차원에서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미국 영화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연간 세계시장 6백40억달러의 8할을 미국 영화가 차지하고 있다.

세계 영화시장은 규모가 급속도로 커져 오는 2010년엔 현재의 2배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영화산업이 '국가간 경쟁의 최후 승부처' 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21세기는 문화전쟁의 시대며, 미국 영화는 미국의 문화패권 유지에 필요한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미국 영화산업에서 한국 시장은 소홀히할 수 없는 존재다.

한국의 영화관객들은 할리우드 영화에 '중독' 돼 있다.

연간 관객 동원수에서 1~5위는 항상 미국 영화가 차지한다.

그런데도 미국은 한국 영화산업의 마지막 보루인 스크린 쿼터제마저 포기하라고 요구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 가닥 위안은 최근 한국영화 몇편이 보여준 선전 (善戰) 이다.

'타이타닉' 의 관중동원 기록을 깬 '쉬리' 돌풍이 잠잠해지자 그 뒤를 잇는 주자 (走者) 로 SF영화 '용가리' 가 등장했다.

'용가리' 는 지난 17일 개봉 이후 이틀만에 25만명을 동원하면서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같은 날 개봉한 '타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등 할리우드 대작들을 제친 '용가리' 의 괴력 (怪力) 은 놀랍기만 하다.

제작.연출을 맡은 심형래 (沈炯來) ㈜영구아트무비 사장은 앞으로 5년 안에 할리우드를 따라잡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신지식인' 첫번째 모델인 그가 만든 "못하니까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니까 못하는 것" 이라는 유행어처럼 한국영화계가 '용가리' 의 성공을 보고 "우리도 한번 해보자" 는 자신감을 회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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