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테레사수녀' 대만 불교자선단체 정옌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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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액수가 크다고 정성이 큰 건 아니에요. 마음이 담긴 작은 정성들이 진짜 정성이지요. 만약 목돈이 하늘에서 그렇게 떨어진다면 작은 정성이 모여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

10여년 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종합병원을 짓는 데 써달라며 미화 2천만달러를 내놓은 한 일본인에게 정옌 (證嚴.62) 법사 (法師) 는 이렇게 거절했다.

세계 각국에 4백만명 회원을 둔 대만 최대의 자선단체 츠지 (慈濟) 불교재단 대표. 그녀는 지금도 틈만 나면 헌금용 스웨터를 짠다.

'작은 정성' 에 대한 신념 때문이다.

정옌 법사가 66년 설립한 츠지재단은 에티오피아.르완다 등 아프리카에서부터 체첸.캄보디아.네팔.페루 등에 구호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주로 진료시설.대학.연구소 설립과 교육.문화프로그램 개발을 돕고 있다.

기부금으로 충당되는 운영비만도 수십억달러다.

그러나 기도 틈틈이 양초 등 생활필수품을 직접 만드는 그녀의 삶은 40여년 전 불교 입문 때와 다름없다.

대만 중서부 타이중 (台中) 현 (縣)에서 태어난 정옌이 불교를 처음 접한 것은 15세 때. 어려서 고아가 된 그녀를 친딸처럼 키워주던 숙모가 심한 위병에 걸렸다.

그녀는 대자대비 (大慈大悲) 의 상징 관세음보살을 향해 "숙모를 낫게 해주면 내 삶의 일부를 바치겠다" 고 간절히 기도했다.

병은 기적적으로 나았고 그녀는 약속을 지켰다.

23세 처녀는 대만 동부의 화롄 (花蓮) 시 외곽 작은 절에서 정식으로 비구니가 됐다.

정옌은 가난한 신도들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것조차 가슴 아팠다.

특히 화롄시에서 병원비가 없어 핏덩이를 흘리며 쫓겨난 임산부를 본 뒤로 그녀는 돈 때문에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동시에 "불도 (佛徒) 들은 자신의 복만 기원하며, 신도의 헌금도 절을 짓는 데만 사용하더라" 는 비판을 접하고 사회봉사활동의 필요성을 느꼈다.

"관세음보살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려고 1천개의 눈및 사랑과 자비를 베풀 1천개의 손을 가졌다. 내가 그 눈과 손이 돼 불도들도 소극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고 다짐했다.

정옌은 30명의 동료 승려.신도들과 함께 츠지재단을 만들었다.

회원들은 가난한 이들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유아용 신발들을 만들어 팔았다.

정옌 법사는 또 직접 깎아 만든 대나무 저금통을 나눠주고 매일 50센트 (당시 미화 2센트) 동전을 모으도록 했다.

'한달치를 한꺼번에 저축하면 안되느냐' 는 질문엔 "그러면 한달에 한번씩만 선행을 생각하는 셈" 이라며 타일렀다.

몇년 후 방 한칸의 무료진료소를 열 수 있었다.

마침내 86년 7백50개의 병상을 가진 대만 동부지역 최대의 종합병원 '츠지불교병원' 을 세웠다.

기존 병원과 달리 수술.입원 때 보증금을 받지 않았다.

정옌은 오늘도 입원환자들을 돌본다.

"인생은 언제 어느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인간의 힘은 스스로 원하는 만큼 강해진다. 부처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의지해야 한다" 는 그녀의 말은 훌륭한 치료제다.

'아시아의 테레사 수녀' 로 불리는 정옌은 91년 막사이사이상을 받았고, 93년엔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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