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민족의 정체성]핏줄만 고집할때 지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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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동포사회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다민족 국가에 거주하는 한민족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기존의 지역적.언어적.역사적 연결고리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찾는 것이 한계에 달했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제 같은 민족이라도 꼭 단일 국적을 가질 필요는 없게 됐다.

또 민족의 이익과 국가이익이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

과거와 같은 국가 주도의 발전전략이 한계에 이른 변화된 상황에서 민족 정체성 확보를 위해 새로운 전략이 요청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정부가 마련한 '재외동포법' 이 이를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이와 관련, 지난달 29일 해외교포문제연구소 (이사장 유재건)가 개최한 '해외동포의 법적 지위와 교포사회의 미래상' 이라는 주제의 포럼에서는 각 지역에 따라 특수하게 나타나는 한민족의 정체성 위기 문제와 향후 과제들이 심각하게 다뤄졌다.

다음은 이날 토의된 내용 요약.

◇ 장태한 교수 (UC리버사이드.인종학)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 정체성 문제는 일본계처럼 '동화' 할 것이냐, 아니면 중국계처럼 고유의 전통을 고집하는 '배타성' 을 나타낼 것이냐 하는 갈등양상으로 나타난다.

다민족 사회에서의 정체성 찾기에 적절한 모델로는 모국의 발전과 지역사회의 발전에 적극 기여하는 유대계 커뮤니티를 꼽을 수 있다.

우리 동포사회도 유대계처럼 소수민족에 불리한 법안.언동에 대해 즉각 반응하는 등 미 의회와 행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민권단체' 조직을 활성화해야 한다.

◇ 박병윤 (재일 한민족연구소장) =재일동포 사회의 현안은 민족의 '분열' 과 일본인의 '차별' 이라는 이중적 고통으로 요약된다.

이의 해결방안으로 '통일지향적 모델' 을 제시하고자 한다.

즉 70년대 공영주택 입주자격과 연금가입 요구투쟁, 80년대 지문제도 철폐투쟁, 90년대 민족학교 설치운동 등에서처럼 민족 공동이익을 위해 이념을 초월한 폭넓은 네트워크를 조직할 때에만 동포간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삼 (중국 연변일보 기자) =중국 조선족의 경우는 다른 지역과 달리 국적과 민족문제가 뚜렷이 분리되고 있다.

이는 국적없이는 자치가, 자치없이는 민족의 동질성을 보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조선족은 한국의 경제위기, 생존무대의 전국적 확대, 옌볜 (延邊) 지역 중국인 증가, 젊은층의 출산기피 등으로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이중 국적자인 조선족에게 민족성으로 국적을 아우르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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