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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투자 통해 연기금 주식투자 늘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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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의 주식투자 전면허용 방침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지금과 같은 저금리 상황 하에서는 채권수익률 및 은행예치 이자율에 연동돼 있는 연기금 수익률 저하가 불가피한 만큼 연기금의 주식 투자 제한규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상당히 매력적인 대안으로 생각되지만 야당과 노동계.일부 전문가는 반대 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명분은 그럴 듯하나 과거에도 그랬듯이 자칫하면 국민의 돈을 날려버리거나 관치경제로 흘러갈 위험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와 여당이 표면적으로는 연기금의 수익성 및 안정성 제고를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내심 맥없이 주저앉고 있는 주식시장을 자극해 전반적인 경기상승의 전기를 마련해 보려는 발상이 매우 위험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사실 독일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의 경우 공적 연기금을 주식 투자에 운용하는 비율이 60% 이상인 점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10% 미만에 그치고 있어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운용되고 있지 않으냐는 의문이 충분히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약 45%를 외국인 투자자들이 장악하고 있고, 이들의 주식거래 행태가 국내 주식시장의 예측 불가능성을 가중시켜 온 마당에 공적 연기금을 주식시장에 무제한으로 투입하는 게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무리하게 국민의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정부와 여당의 주장대로 연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도모하면서 주식시장 활성화를 통해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되는 묘안을 찾아보는 게 좋을 듯하다. 이를 위해 국제금융계 일각의 새로운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위 사회책임투자(SRI:Social Responsible Investment)가 그것이다. 사회책임투자란 재무적 건전성뿐 아니라 윤리성.투명성.환경친화성 등의 관점에서 평가해 이에 적합한 기업을 주식투자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윤리적이고 환경 위험성이 높은 기업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적용하는 투자방식이다.

세부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이것이 현실화한다면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장점이 예상된다.

첫째,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연기금의 안정성과 수익성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둘째, 건전한 기업경영 관행을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연기금이 사회책임투자를 주도하게 되면 기업경영자는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경제성.사회성.환경성을 함께 고려하는 경영방식을 채택하게 될 것이다. 노조가 나서 사회공헌기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칠 필요도, 지역사회나 사회단체가 기업과 반목할 이유도 사라질 것이다.

셋째, 외국 투기자금에 노출돼 있는 우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막대한 자금력과 전문성을 갖춘 외국인 투자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주식시장에 대규모 연기금 투자가 확대되면 제조.에너지.금융 등 기간업종의 우량 기업이 외국인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병욱 LG환경연구원 원장·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