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동심의 시집 2권 잇단 출간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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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머리가 복잡하다.

어깨가 뻐근하다.

살기가 팍팍하다.

이럴 때, 곁에서 이런 푸념이 들려온다.

"글쎄, 여기 좀 보세요/망할 놈의 장끼란 녀석이/이토록 콩뿌리를 헤집어 놨어요!…올 봄, 콩씨를 세 번이나 넣도록/마구 파 뒤집어대길래/약 놓아 까투리를 잡아버렸지요/그랬더니 장끼란 놈/그 뒤론 나만 안 보이면/슬슬 콩밭을 기어요…까투리 무덤 앞에서/목탁까지 두드려 주었건만, /그게 뭐하는 짓이냐 생각했는지/갓 열매 맺혀 가는 콩밭에 내려와서까지/날마다 이 지랄이요, 이 지랄!" ( '푸념' 중) 콩농사 짓는 스님의 목소리를 빌어 시인이 읊는 푸념조를 듣노라면 한탄 대신 슬그머니 미소가 흘러나온다.

콘크리트에 갇힌 현대인들은 자연에, 농촌에 영원한 향수를 품게 마련이기 때문일까. 어린애들마냥 천진한 말투로 더없이 쉽게 시를 풀어가는 솜씨 때문일까. 푸념을 읊은 시인은 지금 세상에 없다.

마흔 중반이던 작년 이맘때, 암으로 때이르게 세상을 떠난 시인 임길택씨. 강원도 산간 마을, 경상도 농촌 마을에서 15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시집 '탄광마을 아이들' '할아버지 요강' , 동화집 '느릅골 아이들' 등을 내놓은 시인의 이력에 1주기를 맞아 시집 한 권이 늘어났다.

유고시집 '똥 누고 가는 새' (실천문학사.5천원)가 그것이다.

시집 곳곳에는 ' - 요' 자의 종결어미와 후렴구처럼 시행을 반복하는 수법이 눈에 띈다.

이는 흡사 동시같은 느낌이지만, 농촌풍경이 푹 배어나는 시어와 꾸밈없이 전개되는 시의 구조는 역으로 도시 어른들의 마음에 새롭게 와닿는다.

이같은 미덕은 '섬진강' 의 시인 김용택씨가 내놓은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실천문학사.5천원) 도 마찬가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콩 잡아라 콩 잡아라/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어, 어, 저 콩 좀 봐라/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콩, 너는 죽었다" ( '콩, 너는 죽었다' 중) 출근길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상사나 거래처와 갈등을 빚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 씩 '너, 죽었다' 를 속말로 던졌을 지 모를 도시인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싯귀절이다.

전북 임실 출신인 시인이 현재 고향마을 작은 분교에서 전교생 열아홉명을 가르치는 교사인 것이 우연은 아닌 듯 싶다.

시인은 "이 시집은 아이들이 나에게 가르쳐준 동시" 라고 서문에서 말한다.

그저 아이들이 아니다.

"운동장 너머로 늘 파란 호수가 펼쳐져 있고, 호수에는 계절마다 색다른 산 그림자들이 어른거리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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