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미스터리소설 '카자르사전'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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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역사속에서 사라진 한 제국의 역사가 종교적 논쟁을 통해 다시 쓰여진다.

시인 밀로라도 파비치가 독특한 상상력으로 카자르 제국을 재현하는 과정이 환상적이고 신비롭다.

그러면서 심오한 철학적 지혜만 가득한 게 아니라 장난기 어린 포스트 모던한 비유가 줄거리를 이끌어 그 무게가 한층 가볍다.

소설 '카자르 사전' (신현철 옮김.중앙M&B.8천원) 이 마치 경전 읽기와 낱말맞히기 게임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런 이유다.

'십만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사전소설' 이란 부제가 붙은 '카자르 사전' 은 7~10세기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서 크게 세력을 떨쳤던 카자르인들에 관한 역사 미스터리 소설이다.

또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사전소설' 로 구성이나 서술방식이 특이하다.

사전소설이란 소설의 주요 소재를 알파벳 순서에 따라 늘어놓고 이를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소설. 예를 들어 아테 (Ateh).브란코비치 (Brancovich).카자르 (Khazars) 의 순으로 인물 얘기를 서술하면서 소설이 진행된다.

따라서 처음부터 읽는 순서에 얽매일 필요없이 어떤 부분부터 읽어내려가든지 상관없는 독특한 소설이다.

이런 형식으로 수세기에 걸친 시간과 광범위한 공간을 이동하며 각각의 등장인물과 카자르의 역사를 정교하고 신비로운 하나의 그림으로 엮어낸다.

서술방식도 기존 소설의 개념을 넘는다.

하나의 사관에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세 종교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 그래서 이 소설 속에는 또 세 개의 소설이 들어있다.

기독교가 기록한 '레드북' , 이슬람교의 '그린북' 그리고 유대교의 '옐로북' 이다.

이들은 서로 카자르 제국의 역사를 환상적인 수법으로 세세히 묘사하면서 결국 카자르가 자신의 종교를 선택했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이 종교적 논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작가는 이를 통해 종교가 갖는 이념의 차이를 보여주고 하나의 역사관만을 배운 우리에게 역사란 세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서로 상반된 해석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소설의 맥은 카자르 민족의 인물이야기다.

세 종교 중 어느 종교를 택할 것인가를 고뇌하는 카자르의 군주 카간. 카자르의 공주로 시인이자 마술사인 아테의 사랑. 그리고 카자르 사제들의 일파로 아테의 보호를 받는 꿈 사냥꾼과 카자르 논쟁의 각 종교 대표인 퀴릴로스.코라.상가리 등. 이러한 인물들 사이로 일어나는 이스탄불 살인사건 이야기가 역사 소설의 흥미를 더해준다.

이 작품의 작가는 유고 시인으로 그의 첫번째 장편소설이다.

그가 사전이란 기이한 소설 기술을 택한 것은 장황하게 서술하는 대신 언어의 뼈와 이미지만 취하는데 버릇 든 시인의 장점을 살린 것. 시인답게 단칼로 내려치는 듯하면서도 시종 유머러스한 직유와 은유가 돋보인다.

이 책의 마지막 특징. 소설의 여성판과 남성판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옐로북의 말미 슐츠 박사의 마지막 편지중 한문단이 다르다.

작가는 이책을 읽은 남녀가 만나 각자 이를 비교해 본다면 책읽기의 또다른 기쁨을 누릴수 있을 것이라 권한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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