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르는 ‘목포의 눈물’ … 해태팬들 KIA로 돌아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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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옛 해태 야구팬들이 KIA 타이거즈 깃발 아래로 다시 모이고 있다.

해태의 후신인 KIA가 최근 11연승을 달리는 등 시즌 1위로 도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해태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던 호남 야구팬들은 KIA가 2001년 8월 창단 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자 야구장을 하나 둘씩 떠났다. 그러다 올 시즌 들어 KIA가 돌풍을 일으키며 선두권으로 치솟자 다시 야구장을 찾고 있다.


◆전국구 구단이던 해태를 따르다=요즘 광주에서 택시를 타고 야구 얘기를 꺼내면 택시기사들은 “어제도 KIA가 이겼느냐”고 묻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제는 이겼느냐”였다. 해태 시절과 마찬가지로 광주 팬들은 요즘 KIA 승리를 당연시한다. 저녁시간 시내 음식점에서는 KIA 경기 중계방송이 고정이다. 홈 경기 날이면 광주구장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구단 직원들은 입장권 청탁 전화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KIA는 13일 역대 시즌 최다인 16차례 홈 관중 매진 기록을 세우며 홈 총 관중 43만7960명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총 관중(36만7794명)을 훌쩍 넘어섰다. 평균 관중도 8422명으로 지난해보다 3000명가량 늘었다. 관중 증가율 1위에 KIA 관계자들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광주뿐이 아니다. KIA는 전국구 구단 해태가 걸어온 길을 다시 걷고 있다. 두산·LG·SK 등은 KIA가 원정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예년보다 관중 수가 확연히 늘었기 때문이다. 박철호 SK 홍보팀장은 “다른 팀보다 KIA가 왔을 때 문학구장 관중 수가 훨씬 많다”고 전했다. 오는 28일부터 잠실에서 열리는 두산-KIA 3연전은 벌써 지정석 인터넷 예매가 매진됐다. 두산 홍보팀 측은 “28일에는 몇 년 만에 이슈 없는 평일 만원 관중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KIA와 해태가 오버랩되다=KIA 팬들의 응원 분위기도 해태 때와 유사하다. 해태 시절 붉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부쩍 늘었다. 등 뒤에는 윤석민·김상현 등 요즘 KIA 선수뿐 아니라 해태 레전드인 김성한·선동열·김봉연 등의 이름을 새긴 팬도 많다. 노란 풍선 사이로 붉은색 향연이 경기장을 달군다. 또 경기 뒤에는 ‘목포의 눈물’이 울려 퍼진다. 80∼90년대 해태 경기에서 볼 수 있던 모습이다. 팬들은 KIA를 보고 해태 시절의 향수를 느끼는 듯하다. 당시 근성과 패기로 뭉쳐 승리를 일궈내던 모습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원년부터 팬이던 임창순(55·제조업)씨는 “예전 해태 생각이 난다. 김성한·김종모·김봉연처럼 김상현·최희섭이 잘하고 있다. KIA로 바뀌면서 힘이 나지 않았지만 성적이 오르니까 요샌 응원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같은 점과 다른 점=하지만 선수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응원 열기나 팀 전력이 해태 때보다 떨어진다고 말한다. KIA 이종범은 “지금 KIA 팬들의 응원을 보면 해태 시절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당시 팬들의 반응이 더 열광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 “팀 전력도 해태는 완성된 선수들이 전력을 만들었다. 지금은 없는 상황에서 잘하니까 팬 관심이 몰리는 듯하다. 다만 해태 때 끈질긴 승부 근성이 어느 정도 생긴 듯하다”고 덧붙였다.

이순철 MBC ESPN 해설위원도 “해태는 꾸준히 성적을 내면서 자연스럽게 팬층이 두터워졌다. KIA로 바뀌면서 성적이 안 좋다가 다시 성적을 내니 예전 해태 팬들이 향수를 느끼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앞으로 정상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팬들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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