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기 왕위전]조훈현 9단 - 목진석 4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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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曺9단, 6연승

제5보 (113~148) =좌하에서 최후의 접전이 시작된다.

아직 중반인데 최후라고 말한 것은 대세가 기운 흑이 이곳을 자신의 무덤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장고 끝에 115로 젖혀가는 睦4단의 손끝에 비장함이 묻어나온다. '참고도' 흑1로 뛰면 바둑은 길어진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물러서서는 승산이 없다.

우선 백은 두텁고 흑은 엷다. 흑의 자랑이라면 실리로 앞섰다는 것인데 흑집도 세어보면 40집 남짓에 불과하다. 백은 공격하면서 좌변을 구축한 뒤 어느 시점에 실전보의 A로 잡기만해도 40집은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결사적으로 머리를 두드려 전쟁을 벌이지 않으면 기회가 없는 것이다. 116과 118을 선수하며 호흡을 조절한 뒤 曺9단은 예상대로 120으로 절단해온다. 그는 한참 수를 보더니 힘주어 끊었다.

이후는 외길이다.

어떤 의미에서 120의 순간 흑백간의 생사는 결정된거나 다름없다.

흔히 "프로는 몇 수까지 보느냐" 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이런 식의 수상전, 즉 갈림길이 없는 외길수순에선 프로들은 무한정 수를 읽을 수 있다.

124가 수줄임의 급소며 서로 수를 한 수씩 줄여 148까지 왔을 때 睦4단은 "졌습니다" 하고 항복을 선언했다.

도전권을 목전에 두고 돌을 던지는 睦4단의 얼굴은 저녁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더 둔다면 흑 '가' 로 메우는 수. 백 '나' 엔 흑 '다' 로 패를 집어넣는 수밖에 없는데 천지대패라 만패불청이다.

좌변 백은 두 수에 죽지 않는다.

박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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